정부-경영계 '주휴시간 갈등'…문제는 복잡한 임금체계
정부, 최저임금 산정에 주휴시간 포함키로…경영계 반발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김지헌 기자 = 정부가 당초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에서 예고한 대로 최저임금 산정 기준 시간에 주휴시간을 포함하기로 했다.
이 문제를 둘러싼 정부와 경영계의 갈등으로 극히 복잡한 국내 임금체계의 문제가 다시 한번 불거졌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심의한 국무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최저임금 산정 기준 시간에 주휴시간을 포함하는 문제에 대해 "당초 개정안대로 시급 산정을 위한 시간과 임금에 포함되도록 했다"고 밝혔다.
“최저임금 산정시 약정휴일 제외, 법정 주휴시간 포함” / 연합뉴스 (Yonhapnews)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하지는 못했다. 최저임금 산정에 법정 주휴시간은 포함하되 노사 합의로 정하는 약정휴일시간·수당은 제외하는 내용의 수정안을 오는 31일 심의하기로 했다.
주무 부처인 노동부가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해온 것은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한 개정 최저임금법이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됨에 따른 것이다.
개정 최저임금법은 매월 1회 이상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임금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넣되 정기상여금의 경우 시급 기준인 그해 최저임금 월 환산액의 25%는 산입하지 않도록 했다. 복리후생 수당은 최저임금 월 환산액의 7%가 산입범위에서 빠진다.
최저임금 산입범위에서 제외되는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 수당을 계산하려면 최저임금 월 환산액부터 구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시급인 최저임금에 1개월에 해당하는 최저임금 산정 기준 노동시간을 곱해야 한다.
노동부는 시행령 개정안에서 최저임금 산정 기준 시간에 소정근로시간(노동자가 실제 일하기로 정해진 시간)과 주휴시간을 포함한 '소정근로시간 외 유급으로 처리되는 시간'을 합하도록 했다.
주휴시간은 주휴수당 지급에 해당하는 시간으로, 노동자가 실제 일하지는 않은 시간이다.
근로기준법상 주휴수당은 1주 15시간 이상 근무한 노동자가 휴일에 일하지 않고도 받는 1일치 임금으로, 한국 외에도 스페인, 멕시코, 대만, 브라질, 콜롬비아, 터키, 태국, 인도네시아 등 8개국에 있는 제도다.
소정근로시간 주 40시간을 기준으로 하고 월평균 주 수(4.345)를 적용할 경우 최저임금 산정 기준 시간은 소정근로시간만 넣으면 174시간이고 주휴시간(일요일 8시간)을 합하면 209시간으로 늘어난다.
최저임금 산정 기준 시간은 개별 사업장의 최저임금 위반 여부를 가리기 위해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들어가는 월급을 시급으로 환산할 때도 적용된다.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도 이 부분에서 불거졌다.
최저임금 위반 여부를 따질 때는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월급으로 준 임금 중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들어가는 것을 합해 최저임금 산정 기준 시간으로 나눠 '가상 시급'을 산출하고 이를 최저임금과 비교한다.
개정안대로 최저임금 산정 기준 시간에 주휴시간 등을 포함하면 분모가 커져 가상 시급이 줄어든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같은 월급을 주고도 최저임금 위반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 8천350원이 적용되는 내년에 노동자 A 씨의 월급 중 기본급을 포함한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들어가는 임금이 170만원이라면 소정근로시간인 174시간으로 나눌 경우 가상 시급이 9천770원이 돼 최저임금 위반이 아니지만, 주휴시간을 합한 209시간으로 나누면 8천130원으로 줄어 최저임금 위반이다.
개정안의 내용은 노동부가 1988년 최저임금 제도 도입 이후 일관적으로 적용해온 행정 지침과 일치한다.
그러나 대법원이 2007년부터 이와는 맞지 않는 판례를 내놓으면서 혼란이 생겼다. 일부 대법원 판례가 최저임금 산정 기준 시간을 소정근로시간으로 해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경영계는 최저임금 수준이 낮았던 시절에는 노동부의 행정 지침을 받아들였으나 최저임금이 빠르게 인상되자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삼아 행정 지침에 반발하기 시작했다.
노동자가 실제 일하지도 않은 주휴시간 등을 최저임금 산정 기준 시간에 포함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게 경영계의 주장이다.
노동부가 지난 8월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로 행정 지침의 명문화에 나서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를 비롯한 경제단체가 성명을 내는 등 집단 반발 양상으로 확산했다.
노동부는 행정 지침과 대법원 판례 불일치로 인한 혼란을 막기 위해 시행령 개정으로 지침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최저임금법도 최저임금 환산 방법을 시행령으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 판례는 현행 최저임금법 시행령이 최저임금을 시급으로 환산할 때 '소정근로시간 수'로 나누도록 규정한 데 대한 '문리적(文理的) 해석'이라는 게 노동부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경영계는 노동부가 대법원 판례에 따라 행정 지침을 바꿔야 한다고 반박한다. 또 최저임금 위반은 형사 처벌 사안인 만큼, 최저임금 환산 방법을 명문화하더라도 죄형 법정주의에 따라 국회 입법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현대모비스를 비롯해 고액연봉을 주는 일부 대기업에서 최저임금 위반이 적발되자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대기업의 최저임금 위반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경영계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의 폐단이 이번에 여실히 드러났다며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으로 고액연봉 대기업도 최저임금 위반이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했다.
그러나 고액연봉 대기업의 최저임금 위반은 최저임금 인상보다는 기본급이 지나치게 적은 기형적인 임금체계 탓으로 노동부는 보고 있다.
국내 기업은 대부분 기본급뿐 아니라 상여금, 시간외근무 수당, 연월차 수당, 성과급, 급식비, 교통비 등 복잡다기한 임금체계를 갖고 있다.
이는 연장근로수당 등의 기준인 기본급을 최소화하기 위한 경영 전략의 결과라는 게 노동부의 판단이다. 경영계는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와 기업에 불리한 노동관계법에 적응해온 결과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이날 입장문에서 최저임금 산정 기준 시간에 주휴시간을 포함하기로 한 것을 비판하며 "우리나라의 복잡하고 기형적인 임금체계를 단순하고 체계적인 선진형으로 개편하는 것을 최우선적인 노동행정 국정과제의 하나로 추진해줄 것을 정부에 요청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복잡한 임금체계는 일선 사업장의 최저임금 준수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도 거론된다. 노동자가 자기 임금이 최저임금 위반에 해당하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복잡한 임금체계를 단순화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노동계도 입장이 같다. 다만, 노동계는 지나치게 적은 기본급을 늘려 전반적인 임금 상승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부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 따라 기업이 1개월 이상 주기로 지급하는 상여금 등을 매월 지급하도록 하는 등 임금체계 개편을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개별 사업장에서 노사의 이해관계가 얽힌 임금체계를 개편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경총은 정부가 고액연봉 대기업이 최저임금 위반에 해당할 경우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시정 기간을 주기로 한 데 대해 "노조 합의 없이는 어떤 임금체계 변경이 불가능한 기업 현실에서는 최장 6개월의 자율 시정 기간 부여는 정부의 책임 회피성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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