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골목 가득했던 책향기가 사라진다…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변화 안간힘에도 임대료는 매년 오르고 매출 1/3로 곤두박질
업종 변경 점포 점점 늘어나…가장 큰 대우서점도 폐점 위기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24일 국내 유일 헌책방 거리인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아 데이트하는 연인들과 관광객들로 붐볐다.
간혹 단종된 책을 구하기 위해 헌책방을 찾는 시민들도 보였다.
하지만 대부분 사진을 찍거나 옛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골목을 둘러보는 관광객들이 대부분이었다.
골목 한쪽에는 점포 일부가 셔터를 내린 채 새 주인을 구한다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이곳은 40년 동안 한 곳에서 서점을 운영했던 대우서점 일부 점포였다.
대우서점은 보수동 책방골목 내 총 3개 점포를 운영했었는데 올해 초 이곳 운영을 포기했다.
매년 수익은 줄어드는데 올라가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우서점이 임차한 건물 중 가장 큰 책방도 내년 2월 당장 가게를 비워야 한다.
건물주가 건물 노후화로 재건축 입장을 밝혀왔기 때문이다.
대우서점 사장 김종훈(65) 씨는 "10년 동안 매출은 1/3로 줄었는데 임대료는 매년 오르고 있다"며 "재건축이 끝나고 다시 들어올 수도 있지만, 추가적인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렵게 되면 폐점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책방골목은 1950년 6.25 전쟁으로 부산이 임시수도가 됐을 때 피란민이 생활을 위해 책을 팔면서 형성됐다.
부산 손꼽히는 관광지가 됐지만 '젠트리피케이션' 영향으로 임대료가 올라 기존 상인이 내몰리는 후유증을 수년 전부터 겪고 있다.
한때 100여개 점포가 모여 있었지만, 현재 38개 점포가 책방골목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형서점과 온라인 서점에 맞서 책방들이 자구책을 찾기 시작해 인터넷 쇼핑몰을 만들고 책방 번영회를 만들어 활로를 모색했지만, 한계에 부딪혔고 하나둘 책방골목을 떠나고 있다.
책방골목이 떠난 자리에 미용실, 사진관이 생겼다.
올해 6월 업주가 바뀌며 새로 문을 연 사진관은 오래된 서적 앞에서 흑백사진을 찍어주며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리모델링을 통해 젊은 감각에 맞춰 북카페 형태로 고객을 끌어 모이는 점포도 생겨났다.
고서적을 팔며 4년간 이곳에서 책방번영회장을 했던 상인 양수성 씨도 고서적과 미술품을 함께 판매하는 갤러리 형태 서점을 준비하고 있다.
시민들은 변화를 반기면서 사라지는 옛 풍경에 아쉽다는 반응이다.
책방골목을 자주 찾는 서모(37)씨는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던 옛 책을 책방 사장님이 먼지를 털며 찾아주는 기억에 이곳을 자주 찾는다"며 "변화는 필요하지만, 옛 모습은 최대한 간직한 채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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