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왕' 감독 "욕망 좇다가 시대와 함께 자멸하는 변종 이야기"
'내부자들' 우민호 감독 신작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우민호(47) 감독을 영화 '마약왕'으로 이끈 계기는 한장의 보도 사진이었다. 1980년 마약왕 이황순 저택을 무장경찰이 포위한 사진이다. 이황순은 집에 필로폰 제조 공장을 차려놓고 국내 외로 유통하다 자택에서 경찰과 대치 끝에 검거된다. '마약왕'에서도 이 장면은 거의 그대로 재연된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우 감독은 "35명 무장경찰과 마약왕 1명이 총격전을 벌이며 세 시간 가까이 대치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큰 충격적이었다"면서 "하지만, 그 시대니까 가능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마약왕'은 하급 밀수업자 이두삼(송강호)이 마약 세계에 눈을 뜬 뒤 흥망성쇠를 겪는 과정을 보여준다. 극 중 이두삼 캐릭터는 이황순뿐만 아니라 실제 여러 마약사범 이야기를 녹여 만들어낸 가공인물이다.
우 감독은 "제어되지 못하고 선을 넘어버린 욕망의 끝은 결국 파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비뚤어진 한 개인의 욕망과 함께 70년대 사회상을 담아내려 했고, 70년대가 끝나면 마약왕도 자멸해버린다"고 소개했다.
우 감독 대표작은 2015년 선보인 '내부자들'이다. 이 영화는 감독판을 포함해 총 900만명 이상을 불러모으며 청소년관람 불가 등급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다. 같은 청불 등급인 '마약왕'도 개봉 닷새째인 23일 누적 관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우 감독은 "'내부자들'의 엄청난 흥행은 기적이었다"면서 "개인적으로는 '내부자들'보다 '마약왕'에 좀 더 영화적 진심이 담겨 만족스럽다"고 했다. 연달아 청불 영화를 찍으면서 마음고생도 많았다고 털어놨다.
우 감독은 "'내부자들' 때 '너무 잔인하다' '감독이 가학적이다' 등의 여러 공격을 많이 받아서 당분간 청불 영화는 하고 싶지 않았다"면서 "그래도 사진을 보는 순간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고 떠올렸다.
'마약왕'은 특히 기승전결과 선악 대결이 뚜렷한 상업영화 공식과는 결이 다소 다르다. 한 인물 일대기를 전기형식으로 그린다.
"한국 상업영화에서 악인을 전면으로 내세워 그 일대기를 다루기는 쉽지 않죠. 대결이나 큰 갈등 끝에 파멸하는 것이 아니라 헛된 욕망을 좇다가 성에 갇혀 점점 미쳐가는 리어왕처럼 스스로 자멸해버리는 이야기입니다. '마약왕'이라는 제목 역시 그 시대 변종 같은 인물이라는 점을 살리고 싶었어요."
이 영화가 생명력을 지니는 데는 송강호 힘이 컸다. 송강호가 약에 취해 경찰과 대치하는 마지막 20분은 한편의 모노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제가 디렉션을 줄 수 있는 연기가 아니었어요. 다만, 너무 엄숙주의에 빠져들지는 말자고 서로 얘기했죠. 마약왕이지만, 외국의 마약왕과는 달라요. 송강호 씨 연기도 일반적인 연기와 다릅니다. 눈은 부릅뜨고 있지만, 마치 몸의 공기는 다 빠져나간 느낌을 주죠."
우 감독은 현재 이병헌과 함께 '남산의 부장들'을 촬영 중이다. 1970년대 정치공작을 주도하며 시대를 풍미한 중앙정보부 부장들의 행적과 그 이면을 재조명해 화제를 모은 동명 책이 원작이다. 우 감독은 "이상하게 그런 소재에 관심이 간다"면서"1970년대의 깊은 그림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fusionjc@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