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텀' 정성화 "누구나 자신만의 지하세계 있죠"

입력 2018-12-22 07:01
'팬텀' 정성화 "누구나 자신만의 지하세계 있죠"

"에릭의 결핍에 공감"…내년엔 '영웅' 10주년 무대에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에릭(팬텀)의 결핍을 저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려 합니다. 에릭의 정서와는 결이 다르지만, 저 역시 콤플렉스와 열등감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죠. 에릭의 결핍을 설득력 있게 끌어내 보려 합니다."

정성화(43)는 지난 1일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팬텀'에서 가면 뒤에 흉측한 얼굴을 감춘 채 극장 지하에 숨어 사는 주인공을 연기한다.

뮤지컬 팬들에게 정성화의 '팬텀' 캐스팅 소식은 의외였을 수 있다. 올해 세 번째 시즌을 맞은 '팬텀' 주인공은 그간 유약하고 상처 많은 이미지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류정한, 박효신, 박은태 등 걸출한 스타들이 보인 모습이기도 하다.

21일 삼청동에서 만난 정성화 역시 "스스로 고민이 많았던 결정"이라고 답했다.

"그간 에릭은 보호해줘야 할 것 같고 건드리면 부러질 것 같은 이미지로 표현됐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처럼 덩치가 남산만 한 사람이 연기해도 괜찮을까, 이미지가 안 어울리는 건 아닐까 고민했었죠. 관객분들이 일반적으로 제게 기대하는 모습은 서글서글하고 개구쟁이 같은 모습일 테니까요."



에릭은 흉측한 얼굴로 태어나 프랑스 파리 오페라극장 지하에서 가면을 쓴 채 숨어 산다. 어머니까지 일찍 잃은 비극 가득한 인물이지만, 무명 가수 크리스틴 다에를 오페라극장 최고의 디바로 성장시키며 그와 사랑에 빠진다.

정성화는 기존 이미지와 다른 역할임에도 "우리 누구나 결핍을 느끼고, 누구나 지하세계를 갖고 있다"는 생각에서 도전을 결심했다.

그 역시 현재는 뮤지컬 분야 최고 배우 반열에 올랐지만 "뭘 해도 중간밖에 안 된다"는 평가를 들으며 괴로워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대학교 1학년 때인 1994년 SBS 3기 공채 개그맨에 합격하며 기대주로 주목받았지만 개그맨 생활 내내 이렇다 할 성공을 맛보지 못한 채 도태됐다.

"옆에 잘 나가는 동료들을 보면서 콤플렉스를 느끼고 자신감은 점점 사라지던 시절이었죠. 20대 중반까지 개그맨 생활을 했는데 한 번도 잘 돼 본 적이 없어요. 다신 그 답답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달려온 측면이 있을 정도로요. 저 역시 일종의 결핍을 느끼며 살았던 사람으로 에릭에 깊이 공감했던 것 같아요."

에릭이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것처럼 그에게도 대중에 내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이 존재한다.

"과거의 습관 때문인지 남들의 평가, 관객들의 댓글 등을 쿨하게 넘기지 못해요. 내 가치와 퍼포먼스를 증명해야 하는 배우로서의 삶이 쉽지도 않죠. 그러나 점점 내가 만족할 내 모습에 집중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여전히 갈증과 부족함을 느낀다고 말하는 정성화지만 이미 뮤지컬 분야에서는 '믿고 보는 배우'란 수식어로 통한다.

2007년 '맨 오브 라만차'의 돈키호테 역에 조승우와 더블 캐스팅되면서 뮤지컬 스타로 부상했고 2012년 뮤지컬 '레 미제라블'에서는 단독 캐스팅으로 10개월 대장정을 이끌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작년 인터파크가 집계하는 '골든티켓어워즈'에서 옥주현과 함께 최고의 티켓파워를 지닌 배우로 선정되기도 했다.

어떤 작품을 맡겨도 힘 있게 끌고 나가는 게 그의 장점이다.

최근 1년여 간만 되돌아봐도 '광화문 연가', '레베카', '킹키부츠', '웃는 남자' 등 굵직한 작품에 쉼 없이 출연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번 작품을 마치면 내년 3월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영웅' 10주년 무대에 선다.

'의외의 캐스팅'이라고 여겨지는 이번 '팬텀' 출연과는 달리 '영웅'은 정성화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작품이다. 정성화는 2009년 초연부터 이 작품과 함께했다.

"오래 한 작품이라고 전혀 쉽지 않습니다. 기존에 한 작품을 새롭게 보여드리는 게 더 어려운 것 같아요. 그간 제 연륜과 경험을 모두 담은 안중근 연기를 펼치고 싶네요."

그는 올해 공연장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바쁜 시간을 보냈다. 쌍둥이 남매 출산이라는 경사도 맞이한 한 해였다.

"올해는 정말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빴어요. 아빠로도, 배우로도 해내야 하는 일이 정말 많았죠. 아내가 사주를 보고 왔는데 평생 소처럼 일만 할 사주래요. 하하. 내년에도 건강 잘 챙기면서 만족할 만한 공연을 보여드리겠습니다."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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