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린 "인생에, 세상에 질 것같은 순간 부를 노래가 있었으면"

입력 2018-12-23 06:00
최승린 "인생에, 세상에 질 것같은 순간 부를 노래가 있었으면"

첫 소설집 '질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이 노래를 부르세요'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간암에 걸려 투병 중인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 최민철.

그의 자서전을 쓰던 '나'는 최민철 일대기를 되짚던 중 그가 보스턴에서 오클랜드로 이적할 시기에 열흘 공백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최민철은 '나'의 물음에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지만, 사실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이상한? 신나는? 창피한? 의미 있는?" 열흘을 기억 속에서 꺼낸다.

이적을 결정한 후 조금 답답하고, 화도 나고, 외롭기도 한 마음에 홀로 길을 떠난 최민철은 음식점에서 한 곡 노래를 듣는다.

이 노래는 그를 괴롭혔지만, 역설적으로 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부르면 정의의 힘을 발휘해줄 노래라는 것을 그는 추후 깨닫게 된다.

이처럼 최승린 작가의 첫 소설집 '질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이 노래를 부르세요'(난다)에는 위로도, 응원도 아니지만 그래도 그 순간을 버틸 수 있게 도와주는 작은 한마디가 담겨 있는 듯하다.

23일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만난 최 작가는 "출판사에서 제목을 '질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이 노래를 부르세요'로 추천해줬는데 '내가 정말 그런 이야기들을 쓰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돌아봤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인생에, 세상에 진 '루저'들이 대부분이다.

'렛츠 고, 가자!'의 윤태오는 과거 축구 선수로 벤치를 전전하다 부상을 계기로 운동을 그만둔 인물이고, '검은 숲'의 사진작가 오영일은 성실하나 재능이 어중간해 인정받지 못한다.

최 작가는 자신의 소설이 누군가를 응원하거나 혹은 일어설 수 있게 보듬어주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않아도 "지는 순간 부를 노래가 떠오를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바랐다.

계속 지면서 살아감에도 그 순간들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봤으면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느끼지 못해도 모두에게는 찬란한 순간이 있습니다. 세상이 견고한 것 같지만 틈이 벌어지면서 신비로움이 느껴지는 순간, 지는 인생을 버티게 해주는 그런 순간이 있죠. 그때 부를 노래를 갖고 있었으면 합니다. 내게도 그런 노래가 있나, 그런 생각도 드네요."

작고한 최하림 시인의 딸 최승린 작가는 마지막에 실린 '수유리, 장미원'에서 아버지를 추억한다.

'수유리, 장미원'에 나오는 주인공의 '아버지'는 시인이지만,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시를 작파하고 오퍼상으로 일한다.

'시는 기도'라고 한 '아버지'는 "'시'를 잃어버린 지 오래였지만, 늙고 쇠약해진 몸으로 지금은 그 흔적이 사라진 '수유리, 장미원'을 구태여 찾아 마치 연어처럼 돌아가 죽었"다.

늘 질 수밖에 없던 아버지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걸 버리고 가벼워지는, 그래서 하늘에 닿는" 시를 놓을 수 없던 것이다.

"작가가 되는 데 있어 아버지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지는 않았어요. 다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처음으로 시가 무엇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때 아버지는 '시는 기도야'라고 하셨죠.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 장면이 항상 많이 떠올라요."

최 작가는 미디어아트를 하는 사람에 관한 장편의 부족한 부분을 손보고 있다.

그는 "사회파 추리소설을 쓰고 싶었으나 아무래도 내 글쓰기 스타일과 달라 힘들 것 같다"며 "추리소설이 아닌 추리 형식의 소설이라도 쓸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bookmani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