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억류 후 사망' 웜비어 소송 첫 심리…"정치적 이유로 희생"(종합)
웜비어 부모·전문가들 증인 출석…"악마에 맞서 싸울 것…허위자백·고문 있었다"
(서울·워싱턴=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송수경 특파원 = 북한에 억류됐다가 귀환 직후 숨진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부모가 북한 정권에 책임을 묻겠다고 제기한 소송의 첫 심리가 19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연방법원에서 열렸다.
미국의소리(VOA) 방송과 자유아시아방송(RFA) 등에 따르면 웜비어의 부모는 이날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 아들이 북한의 도발과 미국의 제재 등으로 북미간 대치가 첨예하던 시기에 볼모로 잡혀 정치적으로 희생됐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며 북한 정권의 책임을 물어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했다.
웜비어 가족의 변호사들도 웜비어가 북미간 지정학적 싸움의 '노리개'(pawn)가 됐다며 그는 '정치적 희생양'이었다고 말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보도했다.
이날 심리에는 웜비어의 부모인 프레드 웜비어와 신디 웜비어, 여동생인 그레타 웜비어, 남동생인 오스틴 웜비어 등 가족과 지인들, 웜비어의 친구들이 참석했다. 한반도 전문가인 이성윤 미 터프츠대 교수, 북한 인권전문가인 데이비드 호크 미 북한인권위원회 위원 등도 증인으로 법정에 섰다.
웜비어의 부모는 진술하는 중간중간 감정에 북받친 듯 눈물을 참지 못했고, 방청석에서도 여기저기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렸다고 WP 등이 전했다.
아버지 프레드는 "우리는 더는 북한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이 자리에 섰다. 그들(북한)은 겁쟁이이며, 최악의 일을 했다"며 "나는 오토를 위한 정의를 구현해달라고 미국과 이 법정에 요청하기 위해 여기 섰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이 세상을 떠날 때 정의를 찾겠다는 약속을 했다면서 훗날 아들 곁에 묻히고 싶다는 말도 했다.
어머니 신디는 "북한보다 더 사악한 것은 없다"며 "나는 악마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때 나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들의 죽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저주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신디 웜비어는 의식불명 상태로 자신의 품에 돌아온 아들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을 떠올리며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 희생자들의 사진이 연상됐다. 우리의 아름다운 아이 오토가 괴물로 변해 있었다"고 말했다.
프레드 웜비어는 아들이 북한에 억류됐을 때부터 의식불명 상태로 돌아오기까지의 상황과 가족이 겪었던 심적 고통 등에 대해서도 진술했다.
그는 북한 정권이 아들을 풀어주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외부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면서 자신의 가족이 '북한에 의한 인질' 상태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일이 잘못되는 걸 막기 위해 국무부가 북한 정권에 대한 '모욕'으로 비칠 수 있는 어떤 것도 공개적으로 말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웜비어가 15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은 뒤 국무부 관리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아들의 석방을 학수고대하던 웜비어의 부모는 지난해 6월의 어느 날 밤 조셉 윤 당시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로부터 "웜비어가 의식불명 상태"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프레드 웜비어는 또한 아들이 자신의 잘못을 자백한 기자회견이 북한 당국의 강요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웜비어는 미국에 살 때 도로표지판을 훔쳐 보관했다고 했으나 유품에는 도로표지판이 없었고, 특정 교회의 사주를 받아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도 해당 교회가 그가 다니는 교회의 이름과 달랐다며 "북한 당국이 뒤에서 (웜비어를) 조종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 역시 웜비어가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US hostile policy)'이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사용한 점, 북한을 지칭할 때 'DPRK'라고 말하지 않고 'DPR Korea'라고 한 점 등으로 미뤄봤을 때 북한 당국의 강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또한 웜비어가 분명히 북한으로부터 고문을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CNN방송 등은 전했다.
호크 위원도 "북한은 사법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이번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있다. 자백은 분명히 강요됐을 것"이라며 웜비어의 발에서 발견된 상처와 관련해 전기고문 의혹을 제기했다.
웜비어가 미국에 건강한 상태로 돌아왔다는 북한의 주장에 대한 반박도 이어졌다.
어머니 신디 웜비어는 웜비어가 미국에 도착했을 당시 치아가 손상돼 있었고 신체 일부에 상처가 있었다며 사진을 제출한 뒤 조셉 윤 당시 특별대표가 자신에게 웜비어의 건강이 양호하다는 내용의 서류에 서명해야만 웜비어를 데리고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는 것을 그 증거로 제시했다.
이와 관련, 웜비어 가족 측 벤자민 해치 변호사는 "뇌로 가는 혈류가 5∼20분 가량 차단돼야 웜비어가 입었던 정도의 뇌 손상이 생긴다"는 의사 소견을 전달했으며, 치과 의사 2명도 가지런했던 오토 웜비어의 아래 앞니 두 개가 변형돼 있었다는 소견서를 제출했다.
오토 웜비어의 부모는 이번 소송을 제기하면서 징벌적 손해배상액과 정신적 고통에 대한 보상금, 위자료 등 1조2천400억 원에 달하는 배상금을 북한 정권에 청구했다.
지난 14일에 열린 사전심리에 이어 이번 심리에도 북한 측은 출석하지 않았으며, 법원은 추가 재판 없이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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