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행정가로 1년' 홍명보 "후회 없는 한해였다"
작년 11월 축구협회 전무로 살림살이…개혁·소통에 중점
"한국 축구 어려움 알게 됐다…자선 축구 중단은 아쉬워"
(서울=연합뉴스) 이동칠 기자 = "각계각층에 있는 사람들이 나와 마무리하는 걸 보니 감독 생활할 때보다는 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 한 해 동안은 초중등 고교와 대학 등 축구계에 연결된 모든 분을 만났기 때문에 그분들의 어려움을 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홍명보(49) 대한축구협회 전무는 18일 열린 협회 시상식 때 마지막 순서로 축구계에 종사하는 축구 가족들이 나와 합창하는 장면에서 울컥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난해 11월 축구협회 조직개편 때 협회 전무를 맡으면서 축구 행정가로 첫발을 디딘 후 지나온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기 때문이었다.
그는 1년 1개월 넘게 협회 살림을 책임지면서 축구계 현안과 관련해 분출하는 다양한 요구를 최일선에서 해결하기 위해 분주하게 뛰었다.
11월 8일 협회 전무를 맡은 직후 "더는 방패막이가 되지 않겠다"면서 개혁을 선언했던 그는 취임 20일 만에 '학원 축구를 살려내라'는 학부모들의 시위 때 직접 마이크를 잡고 해결을 약속한 게 '초보 행정가'로 출발이었다.
스타 출신 선수들을 동원해 축구협회의 위기를 돌파하는 '얼굴마담'이 되는 대신 축구의 문제점을 고쳐나가겠다는 의지였다.
그는 약속대로 축구계의 현안과 관련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부처를 드나들며 설득하는 등 짓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3차례 정책 간담회를 열어 학부모를 비롯한 축구 가족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다.
그에게 행정가로 보낸 2018년은 어땠을까?
그는 "후회 없는 한해였다"며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만큼 보람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행스럽게도 재임 기간 멀어졌던 팬심(心)이 돌아오며 축구 열기가 재점화됐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16강 진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던 독일을 꺾으며 세계를 놀라게 했고,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선 남자축구가 금메달 쾌거를 이뤘다.
한국 축구의 '구원 투수'로 투입된 파울루 벤투 감독도 A매치 6경기 무패(3승 3무) 행진으로 안방 홈경기 4경기 연속 만원 관중을 불러모으며 '축구의 봄'을 다시 열었다.
그는 여덟 번째 월드컵이었던 2018 러시아 월드컵을 필드가 아닌 관중석에서 지켜봤다.
선수로 1990년 이탈리아 대회부터 2002년 한일 대회까지 월드컵에 4회 연속 출전했고, 2006년 독일 월드컵에는 대표팀 코치로 참가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때는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선수들을 점검하는 상황이었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는 감독으로 대표팀을 지휘했다.
그는 "월드컵을 관중석에서 본 건 처음이었다. 피치가 아닌 곳에서 보는 다른 형태의 관전은 나름대로 공부가 됐다"면서 "두 경기를 져 비관적인 상황에서 독일전에 나선 우리 선수들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역사적인 일을 이뤄냈다"며 감격스러운 승리 장면을 떠올렸다.
아시안게임 2연패 달성에 대해선 "선수들이 대회 출전 전부터 (인맥 축구 논란으로) 상처를 받았지만, 큰일을 해냈다"며 "말레이시아에 진 게 오히려 선수들이 더욱 뭉치는 보약이 됐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2003년부터 16년째 연말 성탄절 직전 연례행사로 이어왔던 '홍명보 자선 축구'를 접게 된 것에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많은 시간 공을 많이 들였는데, 끝내게 돼 아쉽다"는 그는 "브라질 월드컵이 끝나고 대중 앞에 나타나는 게 어려운 상황이 있었고, 참여하는 분들이 많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때 그만두지 않고 조금 나은 상황에서 마무리하게 된 건 다행스럽다"고 설명했다.
자선 축구 수익금으로 조성된 22억8천만원은 소아암 환우, 스포츠 복지 단체, 축구 유망주, 저소득층 돕기와 청년 실업 지원에 사용했다.
그는 "급하게 수술이 필요했던 소아암 환우가 다음 해 시축자로 나와 감동적이었다"면서 "새 생명을 찾고 청년 실업 상황에서 새 삶은 찾도록 도운 건 보람이었다"고 말했다.
자선 축구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는 캐럴 부르기에 비공인 세계 기록인 1만5천111명이 참가한 2010년 대회와 하얀 눈밭에서 색깔 있는 축구공을 준비 못 해 공에 매직을 칠해 경기를 치렀던 2005년 대회를 꼽았다.
그는 "돈을 얼마 내느냐보다는 주위에 어려운 사람을 이해하고 돕겠다는 마음을 갖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면서 "재단을 통한 장학금 지원은 계속하면서 다른 형태로 사회에 공헌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내년 1월 개막하는 아시안컵에서 우승을 노리는 벤투호에 대한 기대감도 드러냈다.
그는 "1990년 초반에는 아시안컵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시아 대륙에서 가장 큰 대회가 됐다"면서 "이번 기회에 아시안컵에서 59년 만에 우승해 국민에 또 한 번 기쁨을 줄 수 있도록 선수단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최근 전문성과 내부 경쟁력 강화를 위해 협회 조직에 변화를 줬다"면서 "내년에는 광역 단위 디비전5 출범을 통해 승강제를 위한 시스템을 만들고, 생활 축구도 중요한 자원이기 때문에 즐기는 축구 분위기를 만드는 데 힘쓰겠다"는 구상을 전했다.
chil8811@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