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력발전소 정부대책, '위험의 외주화' 근본 처방으론 역부족

입력 2018-12-17 17:41
화력발전소 정부대책, '위험의 외주화' 근본 처방으론 역부족

석탄발전소 근무시스템 손질 중점…원·하청 문제 개선은 미흡



(세종=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정부가 17일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 하청 노동자 고(故) 김용균 씨 사망사고의 대책을 내놨지만, 이번 사고의 근본 원인인 '위험의 외주화'로 불리는 원·하청 구조를 뜯어고칠 구체적인 방안은 없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한 '태안 화력발전소 사고 관계부처 합동대책' 브리핑에서 '그동안 원·하청 구조를 왜 개선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에 "산업안전보건법상 원·하청 관계의 문제에 대해서는 원청의 책임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논의가 수년 전부터 있었고 조금씩 확대돼온 게 사실"이라고 답했다.

이어 "일단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 개정되면 그에 따라 원청의 책임 범위가 크게 확대돼 자기 작업장 전체에 대한 안전보건 책임을 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노동부가 지난달 초 국회에 제출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은 하청 노동자가 당한 산업재해에 대한 원청 사업주의 책임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청 사업주의 안전보건 조치 의무 범위도 '일부 위험한 장소'에서 사업장 전체로 확대했다.

그러나 노동계는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서는 원청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할 뿐 아니라 도급 금지 범위 자체를 확대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직접고용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현재도 발전 5개사에서 정부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맞춰 논의를 하는 상태"라며 "그 논의는 계속되도록 지원할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사고의 경우 김용균 씨의 태안 화력발전소 근무가 불법파견에 해당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노동부는 사고 조사 과정에서 불법파견 여부도 들여다볼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날 대책 발표에서 원·하청 구조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보다는 김 씨의 사망을 초래한 석탄발전소의 근무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집중했다. 석탄 운반설비 컨베이어 등 위험 설비를 점검할 경우 2인 1조 근무를 하게 하고 경력 6개월 미만 직원의 단독작업을 금지한 게 대표적이다.

브리핑에 나온 박영만 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은 "컨베이어 점검 작업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유해·위험 작업은 아니다"라며 "(태안 화력발전소는) 현재로서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해당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컨베이어벨트 작동 중에 김 씨가 설비 내부에 들어가 낙탄 제거 작업 등을 하도록 했다면 위법 소지가 있고 이는 조사를 통해 규명해야 한다는 게 박 국장의 설명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국내 모든 석탄발전소를 대상으로 2인 1조 근무를 포함한 긴급 안전조치를 시행하게 했지만, 이는 법에 규정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발전소의 협조를 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정부는 사고 조사 과정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도 참여시키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정부가 구성하기로 한 석탄발전소 특별 산업안전조사위원회에도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게 된다.

한편, 태안 화력발전소 사고 시민대책위원회는 태안 발전소에 대한 노동부의 특별 산업안전보건감독에 상급 노조 활동가도 참여하게 해달라고 요구했으나 노동부는 특별 산업안전보건감독의 활동이 수사에 해당한다는 점을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박영만 국장은 "(김용균 씨가 속했던 하청 업체인) 한국발전기술의 노조는 특별 산업안전보건감독에 참여하고 있다"며 "외부 상급 노조가 참여하지 않아도 충분히 현장의 문제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태안 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서부발전이 국회에 일부 인명 사고를 누락 보고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누락 사고는 태안 발전소가 자체적으로 관리하는 공사가 아니라 외부 건설업체에 발주한 공사였다"며 "직접 관리하는 공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누락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ljglo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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