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등, 중대한 과실 인정될까…치열한 법적 다툼 예고
경찰 "화재 목격했을 가능성 커…119신고도 안 해"
변호인 "호기심에 날린 풍등, 저유소 화재 예측 못해"
(고양=연합뉴스) 권숙희 기자 = '고양 저유소 화재'를 수사한 경찰이 풍등을 날린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 중대한 과실이 있다며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넘기기로 하면서 앞으로 치열한 법적 다툼이 예상된다.
피의자의 변호인단은 '무리한 수사'라며 즉각 반발, 입장을 표명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와 고양경찰서는 17일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스리랑카 출신의 근로자 A(27)씨를 중실화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검찰에 사건을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보도자료에서 중실화 혐의를 적용한 데 대해 "CCTV 영상, 풍등 낙하를 목격한 위치, 발화된 건초와 거리 등의 현장분석 결과 등을 고려할 때 A씨는 풍등이 저유소 방면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뛰어가 약 2분간 머물면서 풍등이 탱크 주변에 떨어져 건초에 불씨가 옮겨붙은 상황을 충분히 목격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법률 검토 결과, 이러한 상황에서 탱크 폭발 시까지 18분 동안 119 신고 등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행위는 화재 발생에 대한 중대한 과실이라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풍등을 날린 행위부터 신고를 하지 않은 행위까지, 사실상 A씨에게 이번 화재와 관련한 중대한 책임이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수사 초기 긴급체포됐다가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석방됐던 A씨는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A씨 변호를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최정규 변호사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풍등을 호기심으로 날린 행위로 저유소에 불이 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었을까"라면서 "(A씨가) 화재 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일반적인 수준의 화재 교육이지, 저유소 화재와 관련한 교육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최 변호사는 또 "풍등 화재가 지하 폭발과 정말 인과관계가 있는지도 의문"이라면서 "해당 CCTV 증거자료가 없는 걸 보면 경찰에서도 (인과관계를) 추정하는 것일 뿐이므로 이에 대해서도 법적으로 다툼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그는 "경찰이 초기 수사 때 비판 받았던 부분을 번복한다면, 무리하게 수사했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 돼 이렇게 (혐의 적용을) 유지하는 게 아닐까 한다"며 "검찰의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변호인단은 오는 18일 오후 고양경찰서 앞에서 이주 인권 시민단체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경찰은 이날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A씨 외에도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장, 안전부 부장과 차장, 전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 등 4명을 불구속 입건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들에게는 각각 송유관안전관리법 위반 혐의 또는 직권남용 및 허위공문서작성 혐의가 적용됐다.
경찰은 "실화(失火)로 화재가 시작되었으나, 저유소 안전 관리에 대한 구조적 문제가 결합해 대형 화재로 이어진 점을 감안했다"며 "시설관리 등 전반적 문제점을 개선하여 향후 이러한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관련 기관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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