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 개정' 헝가리서 나흘째 반정부시위…"노예법 반대"

입력 2018-12-17 11:17
수정 2018-12-17 12:02
'노동법 개정' 헝가리서 나흘째 반정부시위…"노예법 반대"

'민주주의 원한다' 현수막도 등장…"8년 집권 오르반 총리 '도전 직면'"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 연장근로 시간을 확대하는 노동법 개정 등에 반발해 촉발된 헝가리의 반정부 시위가 점차 세를 불리고 있다. 2010년 집권한 '스트롱맨'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대중의 도전에 직면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1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선 야당 인사와 노동조합, 학생 등 1만여명이 노동법 개정 철회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헝가리 국기와 노동조합 깃발이 나부끼는 가운데 시위대는 부다페스트 명소인 영웅광장에서 의회와 국영방송사 방향으로 가두행진을 진행했다.

일부 시위대는 행진에서 노동법 개정을 겨냥해 "우리는 '노예법'에 반대한다"는 현수막을 들었다. "크리스마스에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은 단지 민주주의"라고 적힌 현수막도 등장했다.

가두행진은 대체로 평화롭게 진행됐으나 밤늦게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국영방송국에 모인 시위대의 해산을 시도하면서 혼란을 빚기도 했다.

이날 시위는 지난 12일 의회에서 노동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래 나흘째 이어진 시위 중 가장 큰 규모였다. 로이터는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2010년 '권좌'에 오른 이래 벌어진 최대 규모 시위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개정된 노동법은 연장근로 허용 시간을 연 250시간에서 400시간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헝가리 정부는 헝가리 경제의 약점인, 협소한 인력풀을 개선할 수 있는 조치라고 주장하지만, 야당과 노동계는 유럽연합(EU)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 임금을 올리는 게 우선이라고 비판한다.

이달 초 여론조사에선 헝가리 국민의 83%가 노동법 개정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권당 청년민주동맹(FIDESZ·피데스)은 이번 시위의 배후에 헝가리 태생의 억만장자 헤지펀드 투자자인 조지 소로스가 있다며 비난했으나 소로스 측은 '외부의 적을 만들어내기 위한 조작'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열린사회재단 등을 통해 헝가리에 민주주의 이념을 전파하려는 소로스는 오르반 총리의 가장 강력한 비판자로 꼽힌다.

노동법 개정이 이번 시위의 도화선이 됐지만 그 이면에는 국제사회에서 '스트롱맨'으로 통하는 오르반 총리의 권위주의적 통치 스타일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깔려있다는 분석이 많다.

그는 올해 4월 총선에서 의회의 3분의 2를 장악한 피데스를 등에 업고 법원과 대학, 중앙은행, 언론 등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법안을 잇달아 통과시키며 '철권통치'의 기반을 다져나가고 있다.

2010년 처음으로 총리직에 오른 뒤 이번 총선에서 3연임에 성공하며 2022년까지 집권 기한을 연장했다. 헝가리가 민주화를 통해 공산주의 체제를 벗어난 이후 20년 역사의 절반을 통치하는 셈이라고 WSJ는 전했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한 50대 여성은 WSJ에 "나는 이 체제에 신물이 난다"고 비판했다. WSJ는 이번 시위가 오르반 총리에게 '새로운 도전'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로이터제공]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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