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성장 대신 경제활력 전면배치…3년차 文정부 방향키 돌리나
"구조전환 직면, 성장잠재력 저하"…중점과제 대부분 성장·혁신에 방점
(세종=연합뉴스) 정책팀 = 정부가 17일 발표한 내년 경제정책방향은 경제활력 제고를 전면에 내세운 점이 눈에 띈다.
문재인 정부가 앞서 발표한 세 차례의 경제정책방향은 소득주도성장 등을 앞세웠는데 이번에는 기업투자 촉진을 포함한 경제 활성화를 강조한 것이다.
현 정부 출범 시 표방한 '사람 중심 경제'의 맥을 큰 틀에서는 이어가되 앞으로는 투자·혁신·구조개혁 등에 더 역점을 두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을 방안은 구체성이 부족하며 카풀(승차공유) 등 민감한 주제는 정책 자료에서 제외하는 등 규제개혁 청사진이 불명확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 경제활력·구조개혁에 방점…소득주도성장 부각 안 해
2019년 경제정책방향은 경제정책 과제로 전방위적 경제활력 제고를 가장 먼저 꼽았다.
정부는 기업의 대규모 프로젝트에 걸림돌이 된 행정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고 민간 자본에 공공시설 사업을 전면 개방해 투자를 활성화하는 데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또 핵심 규제를 개선하고 신기술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며 서비스업을 육성하는 등 경제의 체질을 바꾸고 구조를 개혁하는 것을 정책 과제 중 두 번째로 제시했다.
소득주도성장에 해당하는 내용은 정책 과제에서 '경제·사회의 포용성 강화'라는 이름으로 세 번째로 소개됐다.
이번 경제정책방향에서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표현은 경제정책의 비전·전략을 표기한 부분에 '함께 잘사는 혁신적 포용국가'의 구성 요소로 혁신성장, 공정경제와 함께 기재됐고 그 외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간판만 보면 정부가 올해 9월에 내놓은 국가 비전을 인용했으나 정책 과제의 순서를 보면 무게 중심이 불평등 완화 등 사회통합에서 투자나 혁신 등 경제 활력 쪽으로 이동한 셈이다.
앞서 내놓은 경제정책방향과 비교하면 그간 소홀했다는 비판을 받은 분야를 전면에 내놓고 정치적 논쟁에 휩싸인 소득주도 성장을 상대적으로 덜 부각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인 2017년 7월 내놓은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은 사람 중심 경제로의 전환을 선언하면서 4가지 경제정책 추진 방향 가운데 소득주도성장을 가장 앞에 배치했다.
작년 말에 발표한 '2018년 경제정책방향'은 '일자리·소득주도성장'을 경제정책 과제 중 첫째로 꼽았고 올해 7월에 발표한 '하반기 이후 경제여건 및 정책방향'은 '일자리·소득분배 개선'을 정책 방향 중 가장 먼저 거론했다.
정부가 정책의 우선순위를 과거와 달리한 것은 한국 경제가 처한 구조적 어려움이 그만큼 심각하며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모든 정책을 동원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고용이 장기간 악화한 점 등을 고려하면 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하고 소비를 자극해 산업 활동을 촉진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정부는 내년 경제정책방향에서 한국 경제가 "구조적 전환기에 직면"했고 "주력산업 경쟁력 약화, 혁신 지체 등으로 성장잠재력이 지속 저하"하고 있다고 진단하고서 "내년도 경제 상황이 적어도 금년 수준 이상으로 개선되도록 가용한 정책수단을 총동원"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이 생각하는 우선순위의 변화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전문가와 일반인 모두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공정한 시장질서를 경제정책의 1·2순위 과제로 꼽았는데 최근 조사에서 전문가는 62.5%가 경제활력 제고를 우선 과제로 꼽았다.
일반 국민은 미래대비(28.6%), 경제·사회구조혁신(28.4%), 경제 활력 제고(26.8%)를 포용성 강화(16.2%)보다 중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 16개 과제 중 10개 성장에 방점…"정책 선회했다" 해석도
정부는 16개 주요 과제에서 내년 상반기까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역점을 두겠다고 공언했는데 여기서도 정책 우선순위 변화가 감지된다.
이 가운데 10개 과제는 혁신성장, 규제개혁, 투자 활성화, 산업경쟁력 강화, 재정을 활용한 경기 부양 등 성장을 촉진하는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규모 기업투자 프로젝트 착공 지원, 대형 민간투자사업 발굴·조기 추진, 숙박공유 등 공유경제 활성화, 서비스산업 육성 전략 수립, 중소·벤처 기업 선순환 생태계 보강, 4대 신산업 집중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4대 주력산업 경쟁력 강화방안 마련, 광역권 대표 공공프로젝트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재정 조기 집행 및 공공기관 투자 확대, 보건의료 서비스 확대도 같은 맥락에서 경제 활력에 무게를 둔 과제로 분류된다.
정부는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구조나 탄력 근로제를 보완하는 등 경직된 정책이 부작용을 낳았다는 지적을 수용한 정책도 상반기에 성과를 내야 할 과제로 제시했다.
소득주도성장과 밀접한 항목은 상대적으로 적은 4개였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 상생형 지역 일자리 모델 발굴·확산, 청년 희망사다리 강화, 서민·영세자영업자 소득증대 및 부담 경감, 한국형 실업 부조 도입을 과제로 제시했다.
고용에 관해서는 임금 체계를 연공급 위주에서 직무급 중심으로 전환하는 등 혁신형 고용안정모델을 구축하겠다며 안정보다 혁신에 조금 더 방점을 찍은 과제를 내놓았다.
전문가들은 구조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우선순위에 변화를 준 것은 적절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내년 상반기가 가장 어려울 텐데 투자를 맨 앞에 내세웠다는 것은 긍정적"이라며 "단기 대응책으로 경제활력을 높이고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프레임으로 보인다. 인프라 투자는 건설업이 관련되니 고용유발계수가 높다"고 해석했다.
정부가 정책 방향을 사실상 수정했다는 적극적 해석까지 나왔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팀을 1기에서 2기로 교체하는 과정에서 정책은 그대로 간다는 분위기였는데 (경제정책방향을 보니) 많이 선회한 것 같다"며 "최근 대통령 발언이 기업 기 살리기나 투자 활성화에 초점을 많이 맞췄는데 경제정책방향에 많이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 공유경제 촉진한다더니 카풀은 배제…"규제개혁 의지표명 부족"
정부가 투자 활성화 등을 중시한 것은 의미가 있지만, 규제나 제도 개선에 관한 확신을 주기에는 경제정책방향에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자 활성화 전략에는 행정절차를 신속히 처리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해 현대차[005380]가 추진하는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 등의 조기 착공을 유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개별 사안 중심이라서 정부가 투자 환경을 어떻게 개선할지는 여전히 모호하다는 평가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정책방향은 대표적인 제도 개선으로 기업에 메시지를 줘야 한다. 정부가 '이런 것을 이렇게 하겠다'고 하면 '다른 것도 개선할 것'이라는 메시지가 돼 기업에 의욕을 줘야 하는데 그런 메시지가 들어 있지 않은 것이 한계"라고 말했다.
정부의 투자 활성화 정책이 일부 기업의 가시화된 사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측면도 있다.
윤 교수는 "투자 활성화에서 쉬운 것들만 건드리는 느낌"이라며 "중소기업·대기업 가리지 말고 행보를 넓게 가졌으면 한다"고 지적하고 정부가 노동 분야 개혁에도 속도를 내라고 주문했다.
공유경제 활성화를 주요 정책 과제로 내걸었지만 민감한 이슈는 제외하는 등 규제 개혁이나 서비스산업 활성화에 관한 정부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승차공유 문제다.
정부는 작년 말에 내놓은 2018년 경제정책방향에서는 유상 카풀 서비스 운영기준 및 택시·카풀업계 간 공존방안을 올해 3월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번에는 카풀 문제를 아예 경제정책 방향에 담지 않았다.
대신 정부는 렌터카의 차고지 규제를 완화하는 '카셰어링 활성화'를 경제정책방향에 담았다. 명칭이 풍기는 뉘앙스는 비슷하지만, 성격이 다른 사업이다.
최근 카풀 서비스를 둘러싼 대립이 격해진 것이 정부가 관련 내용을 다루지 않은 배경으로 알려졌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카풀 등에 관한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는 물음에 상생방안을 마련해 대화하겠다고 답했으나 구체적인 방법까지 설명하지는 않았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규제개혁은 이해관계자의 첨예한 대립으로 안 되는 것이 많고 10년 넘게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한 것도 있다"며 "규제개혁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고 청사진을 제공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약하다는 느낌이다"고 말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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