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국제이슈] ③ 동맹 흔들고 합의 깨고…트럼프 '폭주'에 국제질서 요동

입력 2018-12-18 07:10
수정 2018-12-18 07:54
[2018 국제이슈] ③ 동맹 흔들고 합의 깨고…트럼프 '폭주'에 국제질서 요동

트럼프 '미 우선주의' 행보 가속…국제합의 번복·탈퇴·재협상 요구

미·중 패권 다툼도 한 몫, 전후질서 최대 위기…美 리더십도 손상



(뉴욕=연합뉴스) 이귀원 특파원 = 2018년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돼온 국제질서의 '판'이 크게 요동친 혼돈의 해였다.

그 중심에는 바로 전후 질서를 주도해온 미국이 있었다. 집권 2년차를 맞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외교가 폭주기관차처럼 거침없이 달리면서 곳곳에서 확립된 관행과 질서를 흔들어놓았다.

특히 기존 합의나 협정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거나 위협의 칼날을 꺼내 들고 재협상을 요구하면서 한해 내내 파열음이 이어졌다.

세계 패권을 놓고 자웅을 겨루는 중국과 러시아 등 미국의 전통적 경쟁국들은 물론이고 동맹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는 관점에서 동맹국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칼날을 들이대면서, 미국이 중심이 되어 구축해온 글로벌 가치와 다자주의 체제, 무역 및 외교·안보 국제질서가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제질서 위기 경보음…"동맹도 안 봐준다"

트럼프 행정부가 곳곳에서 충돌하면서 국제질서의 '위기 경보음'이 발신됐다.

6월 캐나다 퀘벡에서의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와 지난 11월 파푸아뉴기니에서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그 무대였다.

트럼프 행정부가 '공정한 무역'을 주장하면서도 관세 폭탄으로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한 가운데 G7 정상회의에서 공동성명 채택이 사실상 불발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막판에 트위터로 공동성명을 승인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5개월 뒤 지난달 APEC 정상회의에서도 1993년 회의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공동성명 채택이 무산됐다.

성명 초안에 포함된 '우리는 모든 불공정한 무역관행 등을 포함해 보호무역주의와 싸우는 데 동의했다'는 문구에 중국이 강력히 반대하면서 공동성명이 불발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의 일방주의를 관철하는 과정에서 중국 등 다른 국가들과 충돌을 빚은 결과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취임 직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파리 기후변화협정'을 잇따라 탈퇴하면서 기존 협정과 합의의 파기 또는 재협상의 신호탄을 올렸다. 같은 해 10월에는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회원국 자격도 버렸다.

특히 지구 온난화의 '재앙'을 막기 위한 전 지구적인 노력으로 평가되는 파리기후변화 협정의 탈퇴는 글로벌 거버넌스와 시대적 흐름에 대한 역행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올해 5월에는 국제사회의 한결같은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란 핵 합의 탈퇴를 강행했다. 2015년 7월 이란과 미국 등 5개 안보리 상임이사국, 그리고 독일이 참여해 타결했던 이른바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을 휴짓조각으로 만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원유 등 이란에 대한 제재도 복원했다. 특히 미국의 대(對) 이란 제재를 위반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세컨더리 보이콧' 위협을 가하면서 동맹국인 유럽연합(EU) 등과 갈등을 빚고 있다.



6월에는 이스라엘을 배격하는 태도를 보여왔다는 이유로 유엔인권이사회(UNHRC)에서 탈퇴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와 맺은 중거리핵전력조약(INF) 탈퇴도 예고했다. 러시아의 조약 위반을 주장하며 러시아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게 준수하지 않는 한 60일 안에 조약에서 탈퇴하겠다고 이달 초 최후통첩을 했다.

INF는 1987년 12월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지도자가 체결해 이듬해 6월부터 발효한 양국 간 첫 핵군축 합의다. 파기시 핵 개발 경쟁이 더욱 가속화돼 '신냉전'이 도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강력한 반대에도 이스라엘 주재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고,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에 대한 지원 대폭 삭감,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미 워싱턴DC 사무소 폐쇄 등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평화협상 중재력을 훼손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미국은 중국은 물론 동맹국들에 대해서도 관세폭탄을 투하하며 무역질서를 크게 흔들고 있다.

중국과는 총 2천500억 달러의 관세 폭탄을 때리며 전면적인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고, 중국은 보복관세로 응수하고 있다. 세계최대 경제대국인 미국과 중국간 '고래 싸움'에 미중 양국의 무역파트너들은 유탄을 맞고 있으며 글로벌 경기 둔화의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다. 다만 미중은 지난 1일 아르헨티나에서의 정상회담을 통해 '90일 휴전'에 합의하고 최종 타결을 위한 본격적인 줄다리기에 들어갔다.

미국이 휘두르는 칼에 동맹국들도 사정권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미국은 캐나다, 멕시코와의 기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ㆍ나프타) 탈퇴 카드를 꺼내는 '벼랑끝전술'로 양측의 양보를 끌어내 '미국·멕시코·캐나다합의(USMCA)'에 합의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재협상을 통해 개정했다. 수입 자동차에 대한 관세부과를 위협하며 EU를 비롯해 동맹국들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다자무역의 중심축인 세계무역기구(WTO)에 대해서도 운영 개선을 압박하며 탈퇴를 위협하고 있다.

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대해서도 탈퇴를 불사하며 압박, NATO 회원국의 국방비 증액 약속을 끌어냈다. 내년부터 적용될 제10차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의 연내 체결이 양국 간 이견으로 사실상 불발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부담할 분담금을 현재의 2배로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미 언론이 전한 바 있다.



◇"패권싸움 미중, 동맹국에 편들기 강요"…"세계 신뢰결핍 장애 질환"

트럼프 행정부의 대(對) 중국 강공 드라이브의 기저에는 눈앞의 경제적 이득 외에 미중 두 나라의 패권 다툼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부상하는 중국이 날개를 달기 전에 미국이 아예 싹을 자르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가 빚어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세력확장을 추구하며 미국을 자극하고 있다. 중국이 불공정한 무역관행 고수와 남중국해에서의 군사기지화를 통한 세력확장 등으로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비판도 있다.

지난 4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중국을 겨냥해 국제조약과 협정을 어기고 있다고 언급하자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은 우선주의의 깃발을 들고 일방주의와 보호주의의 몽둥이를 휘두르며 국제질서를 어지럽혔고 연이어 국제기구와 조약에서 탈퇴해 다자주의 체계에 도전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미국과 중국이 곳곳에서 첨예한 경쟁을 벌이면서 동맹국들에 자신의 편에 서도록 하는 이른바 '편들기'를 강요하고 있다면서 미중의 편들기 강요는 경제적 갈등이나 지정학적 위협에 대한 협력 가능성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존 국제질서가 흔들리는 틈을 타 유럽 등 지구촌 곳곳에서 극단주의와 포퓰리즘이 득세하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9월 유엔총회 개막 연설에서 "우리 세상은 '신뢰결핍 장애'(Trust Deficit Disorder)라는 나쁜 질환을 앓고 있다"면서 다자주의 정신을 되살려 현재 암울한 시대상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美리더십 손상…국제질서 심각한 후유증 우려

'트럼피즘'(트럼프주의)으로 불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는 특유의 '마이웨이' 기질에다 지난달 치러진 중간선거를 염두에 둔 정치적 고려도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2020년 재선 도전을 앞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주의는 더욱 기세를 부릴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난달 중간선거에 야당인 민주당이 하원 주도권을 8년 만에 탈환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마이웨이' 국정 운영에도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주의는 협상에서의 승기를 잡기 위한 정치적 계산이 적지 않게 깔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기존 글로벌 가치와 신념을 크게 흔들어놓으면서 세계무대에서 미국의 리더십은 이미 적지 않게 훼손되고 있으며, 그 후유증이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또 기존 다자주의와 협력·상생의 가치가 위협받으면서 냉혹한 '약육강식'의 논리가 득세하고 '각자도생'을 위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미국의 리더십은 이미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첫해인 지난해 조사에서 위기 신호가 나왔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지난해 3월~11월 전세계 130여 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지지율은 30%로 나타났다. 갤럽이 글로벌 리더십 조사를 시작한 2007년 이후 최저치다.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집권 마지막 해 기록했던 48%에서 18%포인트나 하락했으며 31%를 얻은 중국보다 낮았다.

lkw77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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