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이어 베트남?…北美 이견에도 정상회담 향해 '정중동'
신경전 속에서도 협상지속 신호…"한국 중재자 역할 필요 시점"
'美와 전쟁-사회주의' 공통분모 베트남, 北에 비전 제시할 장소로 적격
(서울=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 남북·북미 사이의 비핵화·평화체제 구축 협상이 교착국면을 맞이한 상황에서도 북미가 내년 초의 정상회담 담판을 향해 조용히 움직이는 모습이다.
내년 초로 예정된 정상회담을 향해 나아가는 듯한 각종 신호가 발신되고 있는 것이다.
마크 램버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 대행이 최근 베트남을 다녀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린 가운데, 베트남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 2차 북미 정상회담 유치 의사를 피력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이에 앞서 지난달 29일에는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베트남을 방문해 베트남식 개혁개방 모델인 '도이머이' 관련 현장을 직접 참관했다.
제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지로서 베트남은 북한에는 자국 대사관이 있고, 비행 거리상으로도 부담이 적다는 것이 이점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2월 김정남 암살 사건과 관련 북한이 베트남 정부에 비공식적으로 사과의 뜻을 전달했다는 소식이 최근 전해진 것도 양국이 긴밀한 접촉을 늘려가는 징후로 읽힌다.
미국 입장에서도 베트남은 과거 '적대관계'였지만, 최근 남중국해를 사이에 두고 중국과 갈등을 빚는 가운데 베트남과의 관계 강화에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 이벤트'의 장소로 고려할 만하다.
또 북한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전쟁을 치른 나라이자, 사회주의 국가로서 개혁·개방으로 나아간 베트남은 미국 입장에서 '북한의 미래'를 제시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라고 볼 수도 있다.
다만 지난 6월12일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열린데 이어 다시 베트남으로 결정될 경우 연이어 동남아 국가에서 두 정상이 마주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그림'을 보여주기는 다소 어려울 수 있다.
물론 당장 정상회담 일정이나 장소가 정해질 것으로 예측하기 쉬운 상황은 아니다.
지난 11월8일의 북미 고위급 회담이 연기되고, 연내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이 사실상 무산된 가운데 양측은 팽팽한 '샅바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미 재무부는 10일(현지시간) 북한의 인권침해를 이유로 북한의 '2인자'로 평가되는 최룡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등 3명을 대북 제재 대상에 추가했다고 발표했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북한은 지난 13일 조선중앙통신의 개인 논평을 통해 "우리는 미국이 허튼 생각의 미로에서 벗어나 제정신으로 돌아올 때를 인내성 있게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며 "조미(북미)관계의 축에 미국의 바퀴를 가져다 맞추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미국은 꾸준히 물밑에서 북한에 대화를 제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점, 북한도 쉽사리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되 기관이 아닌 개인의 논평 형식으로 수위를 조절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상회담으로 가는 과정에서 철저한 실무협의를 바라는 미국과, 중간단계를 가급적 생략하길 바라는 북한 사이에 간극이 있지만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평화체제 협상을 본 궤도에 올려야 한다는데는 양측이 공감하고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미국이 아무 '조건 없이' 일단 실무협상에서 만나자고 요구하는 상황에서 북한은 대외적으로는 '제재완화부터 하라'며 버티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북미대화 재개를 대비해 치열하게 '주판알'을 튕기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결국 관건은 북미 간의 이러한 기싸움이 북미 정상의 일정한 양보에 토대를 둔 '결단'으로 이어지느냐, 아니면 북미 정상회담과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형성된 '신뢰'를 훼손하는 수준에 이르느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올해 말까지 북미 간 뚜렷한 진전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김정은 위원장의 1월1일 신년사에 북미관계나 비핵화에 대해 부정적 메시지가 담기고, 그에 따라 내년 초까지 냉각기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런 만큼 한국 정부가 창의적 대안을 들고 적극적으로 미국과 북한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는 26일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 계기 교류나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이달 방한 등 계기에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14일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것은 상황상 확실한 단계로 보이지만, 너무 물밑접촉만 하고 위에서는 기싸움을 벌이게 되면 서로 오해하면서 감정싸움을 할 수도 있으니 북미 양측은 자제하고, 우리도 중재자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hapy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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