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베스터 르베이 "연필로 선율 그리고 채색으로 노래 완성"

입력 2018-12-13 17:42
실베스터 르베이 "연필로 선율 그리고 채색으로 노래 완성"

뮤지컬 음악 거장…한콘진 '스테디셀러 뮤지컬 탄생을 이끄는 힘' 강연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성공이라는 야망의 덫에 걸리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뮤지컬 음악 거장답게 조언에 묵직한 울림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런 덫이 당신의 창작 의식이나 음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런 부정적 영향은 작품을 딱딱하게 만들고 당신의 내면이 충분히 반영되는 것을 막습니다."

주로 뮤지컬 업계 종사자와 뮤지컬 작가나 작곡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건네는 조언이었지만, 예술이 아닌 일상의 삶에서도 사표로 삼을 만했다.





뮤지컬 음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73)는 13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한 '스테디셀러 뮤지컬 탄생을 이끄는 힘―<엘리자벳> 크리에이티브 팀(Creative team)' 강연을 통해 200여 명의 한국 청중을 만났다.

'좋은 뮤지컬 창작을 위한 비밀과 작곡가와의 관계'.

1시간 동안 진행한 강연은 주제가 딱딱했지만, 말에는 생기가 돌았다.

"여러분이 작곡을 하게 되면 노래 스타일, 노래 타이밍을 결정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에 따라 작곡하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날 혹은 그 순간 느낌에 따라 작곡을 하는 것이 가장 좋죠. 그날의 느낌이 어떤지에 따라 그 느낌과 잘 맞는 신을 생각하고, 그것에 따라 음악을 작곡하면 됩니다."

얘기가 이어졌다. "그렇다고 음악 자체의 흐름, 감정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음악이 캐릭터에게 어우러지지 않으면 관객에게 잘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음악은 캐릭터와도 잘 들어맞아야 합니다."

그는 창작자가 자신한테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남의 비판에도 열려있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때때로 혼돈 속에서도 자신을 믿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또 다른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과감해지는 것입니다. 어떨 땐 확신이 안 들지만 그래도 시도하는 것은 중요하죠."

과감한 시도를 할 때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작업을 즐겁고 풍성하게 만들어줄 파트너 중요성도 거듭 강조했다.

그는 "파트너십 중요성을 역설하고 싶다"며 "창조적인 화학작용, 상호 신뢰, 이해, 우정이 필요하다. 이런 여러 요소가 잘 어우러진다면 멋진 파트너십이 이루어질 것이다. 우정이 동반된 파트너십은 가장 어려운 일을 해결할 수 있다. 특히 우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화가에, 음악을 그림에 비유했다.

"나는 나 자신을 화가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연필로 선율을 그리고 채색(오케스트레이션)을 통해 노래가 완성되죠. 난 작곡가로서 오케스트레이션에 대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장면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오케스트레이션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헝가리에서 태어난 르베이는 6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팝송 같은 노래를 작곡하다 미국에서 20년간 영화음악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다 그의 첫 뮤지컬 작품인 '엘리자벳'을 통해 뒤늦게 뮤지컬에 눈뜨게 됐다고 했다.

그는 엘튼 존, 스티븐 스필버그 등과 협업하며 100곡 이상 영화·TV 프로그램 음악을 작곡했으며, '엘리자벳'(1992) 외에 '모차르트'(1999), '레베카'(2006), '마리 앙투아네트'(2006) 등의 뮤지컬 음악을 작곡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들과 딸 중에 누굴 좋아하느냐와 같은 질문"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모차르트'에 나오는 '나는 음악'이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김준수, 박효신이 노래를 불렀을 때 황홀했다. 레베카의 옥주현이 부르는 노래 역시 좋다"며 한국 배우들을 추어올렸다.

그의 작품들은 오리지널 버전을 그대로 들여오는 대부분의 라이선스 뮤지컬과 달리 논 레플리카(non-replica·원작을 일부 수정 및 각색한 버전) 방식으로 한국에 소개됐다.

그는 이에 대해 "그 나라 상황이 반영된 작품이 관객들에게 더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각 나라 문화적 특성이 작품에 녹아드는 것을 보는 건 값지다"고 설명했다.

향후 계획에 대해선 "오페라 작곡도 꿈 중에 하나지만, 그 전에 뮤지컬 작품들을 왕성하게 작업하고 싶다. 일본이나 한국 등 아시아 관객들이 뮤지컬 작품을 많이 좋아하기 때문에 이들과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을 준비하고 싶다"고 했다.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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