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대피령 속 4년째 공포의 삶…'위험천만' 인천 재흥시장 건물
29가구 60여명 붕괴 우려에도 거주…전국 곳곳 위험 건물 방치
소방서 건물마저 '위험' 진단…지자체 후속 조처 지지부진
(전국종합=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소재 15층 건물 '대종빌딩'이 붕괴위험 진단을 받으며 전국 곳곳에 유사한 사례의 건축물 안전에 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건물 대다수는 안전진단 최하인 E등급을 받아 붕괴 발생 위험성이 높은데도 소유권 문제,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주민들이 그대로 사는 것으로 파악됐다.
위험 건물 진단을 받은 지 수년이 지나도록 지방자치단체 후속 조처도 지지부진해 붕괴위험을 무릅쓴 채 주민들만 공포에 떨고 있다.
◇ 긴급대피명령 이후 4년째 거주…주민들, 경제 문제로 이주 못 해
인천 미추홀구는 주안동 지상 3층 높이, 1천59㎡ 규모의 재흥시장 건물을 철거하고 공영주차장과 스포츠 시설을 갖춘 복합스포츠센터를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1975년 준공돼 총 29가구 60여명이 살던 재흥시장은 건물이 오래돼 철근이 부식되고 벽과 계단이 부서지는 등 붕괴 우려가 일고 있다.
게다가 지상 3층이 불법으로 증축돼 각 기둥이 허용치보다 많은 하중을 받고 있어 철거가 시급하다.
이곳은 2015년 4월 대한산업안전협회 안전진단결과에서 최하위인 E등급을 받았다.
미추홀구는 재흥시장 건물이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 거주자들을 이주시키고 있으나 현재까지 철거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상당수 거주자는 보상금을 받고 떠나거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대주택으로 거처를 옮겼지만 일부 주민이 남아 이주를 거부하는 탓이다.
미추홀구는 인천시 지방토지수용위원회에서 재흥시장 명의 이전 심의를 받아 재흥시장 건물의 소유권을 받은 뒤 남은 주민들을 이주시키기로 했다.
전북 익산시 모현동 우남아파트는 2014년 9월 붕괴위험으로 입주민들에 대해 긴급 대피명령이 내려졌으나 4년여가 지난 현재까지 48가구 200여명의 주민이 이주하지 못한 채 그대로 살고 있다.
1992년 11월 준공한 이 아파트는 2002년 구조 안전진단 결과 철거대상인 D, E급 판정을 받은 후 익산시로부터 '재난위험시설'로 지정됐다.
이후 한 차례도 보수·보강 공사를 하지 않아 심각한 붕괴위험 상황에 직면해 있다.
현재 103가구, 400여명 가운데 55가구, 200여명은 이주한 상황이나 나머지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생활하고 있다.
익산시는 재건축 등을 하기 위해 '도시재생 뉴딜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으나 아직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1981년 준공된 2개 동 172가구 규모의 광주 북구 평화맨션은 2014년 7월 A동 지하 기둥 곳곳에서 균열이 발생했다.
철근이 내려앉으며 이를 감싸던 콘크리트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기둥을 긴급 보수하지 않았다면 남은 기둥도 파열할 수 있던 위험한 상황이었다.
결국 정밀안전진단 결과 철거가 시급한 E등급 판정을 받아 재건축을 추진했지만, 주민들의 고통은 오랜 시간 동안 지속했다.
재건축 시공사 선정 수차례 유찰, 수의계약 건설사 사업 포기 등으로 사업에 난항을 겪었기 때문이다.
최근 가까스로 시공사가 선정됐고, 주변 필지 매입도 해결돼 주민들은 새 아파트에 입주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평화맨션 주민은 "재난위험시설에도 재건축을 직접 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없어 주민들이 오랜 고통에 시달렸다"며 "잊을 만하면 비슷한 사고가 발생하는 만큼 지원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 '법 모르쇠' 부실공사에 소송전까지…위험 건물 천태만상
부산에서는 지난해 9월 사하구의 한 오피스텔이 기울어 16가구 입주민이 대피했다.
9층짜리 연면적 491.57㎡ 건물로서 같은 해 2월 사용승인을 받아 완공된 지 7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해당 건물은 건물꼭대기에서 바닥까지 가상의 선을 그었을 때 원래 있어야 할 위치보다 최대 105.8㎝까지 기운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오피스텔 시공사 측은 복구공사를 한 뒤 사하구의 정밀안전진단을 거쳐 현재 주민들이 살고 있다.
경찰 조사결과 해당 오피스텔은 연약지반 보강작업 지시를 무시한 채 들어섰고, 안전대책 없이 터파기 공사가 이뤄지는 등 총체적 부실이 드러났다.
올해 2월 15일 강원 원주시 문막읍에 신축 중이던 3층짜리 건물 일부가 무너지면서 기울었다.
사고 당시 건물은 비어 있어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건물은 1층 바닥이 무너져 15도가량 기우뚱 건물이 됐다.
사고 건물은 18가구 규모 원룸으로 같은 달 말 준공 예정이었다.
이 건물은 추가 붕괴 우려가 있어 원주시가 건축주 등에게 철거를 요구했으며 지난 6월 모두 철거됐다.
원주시는 건물 설계사와 감리자를 해당 시·도에 행정처분을 의뢰했고 건축법 위반 혐의로 건축주와 설계사, 감리자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경북 포항 남구 해도동 고속버스터미널 인근 한 4층 상가건물은 지난 5월 침하하면서 눈에 띄게 기울고 균열이 발생했으나 여전히 방치돼 있다.
당시 포항시는 상가 바로 옆 오피스텔 공사장에서 지하 터 파기하던 중 지하수가 흘러나와 도로가 갈라지고 땅이 내려앉았다고 밝혔다.
포항시는 땅속에 콘크리트를 넣어 메우고 울퉁불퉁해진 인도도 정비했지만, 아직 기울고 뒤틀린 상가는 철거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오피스텔 시공 건설사와 상가 건물주가 2016년부터 피해 보상을 두고 소송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고 이후 상가건물 1층에 있던 음식점 등이 철수해 버려 상가건물은 현재 빈 상태다.
울산 남구에서는 건물 신축공사장 바로 옆 모텔 건물이 올 3월부터 1층 바닥 곳곳에 금이 가고 틈이 벌어졌다.
신축공사장에서 지반을 다지는 개량공사가 시작된 이후였다.
건물주는 남구청에 공사중지 명령을 요청하는 내용증명을 발송하고, 법원에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원은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고, 현재 공사는 중지된 상태다.
남구청 관계자는 "안전진단 점검업체를 통해 모텔을 계측한 결과 사용을 중지해야 할 정도의 문제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재난 안전을 책임지고 위급상황 발생 때 신속하게 현장으로 출동해야 할 소방서가 '위험 건물'로 진단받은 경우도 있다.
경기 북부에서 건축물 중 안전등급 D등급으로 분류돼 관리되는 건물은 남양주소방서 외부 119안전센터 건물 1곳이다.
외부 119안전센터는 1998년 준공돼 오래된 건물은 아니지만 내진 성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돼 D등급을 받았으며 현재 보강공사가 진행 중이다.
시설물 중에는 파주시 파평면 임진강에 설치한 리비교가 2016년 10월 15일 안전진단 결과 E등급을 받아 폐쇄됐다.
리비교는 정전협정 직전인 1953년 7월 4일 만들어져 임진강 건너 민통선 내에서 농사를 짓는 주민들이 주로 이용했다.
파주시는 내년 말까지 105억원으로 리비교를 보수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최해민 우영식 김용태 차근호 이재현 정윤덕 전창해 김광호 백도인 윤태현 변지철 이승형 박철홍 박정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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