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랜드 역전승 이끈 유도훈 감독 한 마디 "너네는 선수 아냐?"
4점 뒤진 연장 종료 50초 전 타임아웃…국내 선수 5득점으로 승리
(서울=연합뉴스) 김동찬 기자 = 연장전 종료 51.7초를 남기고 4점을 뒤진 상황. 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 유도훈 감독은 타임아웃을 불렀다.
4쿼터 종료 27초 전에 2점을 앞선 상황에서 공격권을 잡아 그대로 경기를 끝낼 수 있었지만 박찬희의 실책으로 종료 10초 전에 동점을 허용, 연장전까지 끌려들어 온 터라 이대로 패하면 충격이 더 클 수밖에 없는 위기였다.
11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서울 삼성과 경기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기세가 오른 삼성에 연장 종료 51.7초 전까지 4점을 뒤진 전자랜드 유도훈 감독은 타임아웃을 부른 뒤 선수들의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한마디를 던졌다.
"야, 야. 국내 선수, 너네는 선수 아니냐?"라고 자존심을 긁은 뒤 "게임 져도 되니까 승부 봐, 괜찮아"라고 선수들을 독려했다.
이어 유 감독은 손을 머리 위에 올려놓는 동작을 취하며 "'떡 사세요' 하면서 얘(머피 할로웨이)만 찾을 거야?"라고 다그쳤다.
유 감독은 또 "공격에서 승부처가 오면 (해결을)해줘야 할 거 아냐"라며 "숨으면 안 된다. 시간 충분하니까 자기 찬스 보면서 하라"고 마지막 주문을 한 뒤 선수들을 코트로 내보냈다.
결과는 이미 알려진 대로 강상재의 3점슛에 이어 종료 4초를 남기고 터진 박찬희의 역전 결승 골로 전자랜드가 80-79, 짜릿한 재역전승을 거뒀다.
유도훈 감독의 타임아웃 영상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등에서도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하며 팬들의 높은 관심을 모았다.
유 감독은 12일 전화 통화에서 "농구 선수들이 공 없을 때 움직임도 중요하지만 공을 갖고 있을 때는 할 수 있는 것이 슛, 아니면 돌파, 아니면 패스 가운데 하나"라며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는 "슛, 돌파, 패스는 농구 시작하면서 배우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며 "그런데 가장 중요한 상황에서 그것을 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 공을 머리 위에 올린 채 외국인 선수만 찾아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했던 말"이라고 소개했다.
'떡 사세요'는 예전 어머니들이 머리 위에 바구니를 올리고 떡 살 사람을 찾는 모습에 빗댄 표현이라는 것이다.
유 감독은 "특히 상대가 지역 방어를 서면 빠른 패스를 하거나 파고들거나, 아니면 슛을 던지거나 해야 깰 수가 있는데 무조건 '떡 사세요' 준비만 하고 있으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국내 선수들에게 '외국인 선수만 바라보지 말라'는 취지로 한 말이지만 공교롭게도 이번 시즌 전자랜드는 국내 선수 득점 비율이 10개 구단 가운데 가장 높은 팀이다.
12일 경기까지 전자랜드의 국내 선수 득점 비율은 61.98%로 10개 구단 중 1위다. 국내 선수 득점 비율이 60%를 넘는 팀은 전자랜드 외에 고양 오리온(60.62%), 서울 SK(60.21%)까지 3개 팀이 전부다.
유 감독은 이 수치에 대해 "물론 국내 선수들이 잘 해주고 있지만 중요할 때 득점을 올려주는 역할까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 우리 팀이 '국내 선수 해결사가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자신으로 인해 다른 선수의 득점까지 파생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국내 선수가 나와야 그 선수도 살고 팀도 살게 된다"고 말했다.
정규리그 2위를 달리며 창단 후 첫 챔피언결정전 진출의 목표를 향해 가고 있는 유 감독은 "다른 팀들에 부상자도 많고 그래서 운이 좋았던 것뿐"이라며 "국내 선수들이 역할을 더 해줘야 챔피언결정전으로 가는 좋은 과정이 될 수 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11일 경기에서 타임아웃 이후 국내 선수들의 연속 5득점으로 승부를 뒤집은 것에 대해서도 유 감독은 "그것 역시 계획한 대로 된 장면은 아닌데 결과가 그렇게 돼서 운이 좋았다"고 특유의 '외유내강형 답변'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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