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결국 '항복'…여전히 '끓는' 민심에 국면전환 이뤄질까

입력 2018-12-11 06:31
수정 2018-12-11 13:30
마크롱, 결국 '항복'…여전히 '끓는' 민심에 국면전환 이뤄질까

부유세 부활요구 일축했지만 최저임금 인상 '큰 패' 제시

크리스마스 휴가시즌 다가오면서 시위동력 급격히 약화 전망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한 달간 이어진 노란 조끼 시위에서 분출된 요구들을 대폭 수용하고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면서 향후 프랑스 정국이 국면전환을 꾀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나름대로 강력한 민심 수습책을 내놓았지만, 마크롱 대통령 퇴진 요구까지 나아간 '성난 민심'을 잠재우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마크롱 대통령이 큰 틀의 정책적으로 '유턴'을 한데다 조만간 크리스마스 휴가시즌이 다가올 예정이어서 시위 자체의 동력이 급격히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마크롱 "많은 분노 이해, 상처 드렸다"…'노란조끼'에 항복 / 연합뉴스 (Yonhapnews)

앞서 전기·가스요금 동결,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강화 유예, 유류세의 내년 인상 계획 백지화 등에 이어 새롭게 강력한 여론 진정책을 내놓은 것이다.

마크롱은 담화에서 자신의 단점으로 지적되온 훈계조의 직설화법에 대해서도 "많은 분께 상처를 드려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과하기도 했다.

이른바 '노란 조끼' 시위가 본격화한 뒤 전국에 들불처럼 번진 이래로 마크롱이 직접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한 것은 한 달 만에 사실상 처음이다.

그동안 총리와 내무장관을 전면에 세우고 직접적인 메시지를 내지 않은 마크롱에게 시위대와 언론, 야권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라고 요구해왔다.

프랑스 정부의 지속적인 유류세 인상 등에 항의해 지난달 17일부터 본격화한 프랑스의 노란 조끼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격화하며 최근에는 폭력사태로 번지는 양상을 보였다.

특히 지난 1일 파리에서는 최대 번화가 샹젤리제 거리 주변의 상점이 대거 약탈당하고 다수의 차량이 시위대의 화염병 공격으로 불타면서 정부는 코너에 내몰렸다.

이때 개선문에는 '마크롱 퇴진' '노란 조끼가 승리할 것'이라고 적힌 낙서로 얼룩졌고, 개선문 안의 전시공간도 약탈과 파괴의 손길을 피해 가지 못했다.

마크롱은 당초 4차 시위인 지난 8일 이전에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려고 했지만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붓는' 형국이 될 수 있다는 참모들의 만류로 담화 시기를 이날로 미룬 것으로 전해졌다.



마크롱이 이날 발표한 조치들은 그가 집권 후 추진해온 국정과제의 상당 부분을 철회한 것으로, 노란 조끼 시위로 분출된 저소득층과 농어촌 지역민들의 요구에 사실상 '굴복'한 것에 가까워 보인다.

특히, 최저임금을 월 100유로 인상하기로 한 것은 프랑스의 9%에 이르는 고질적인 높은 실업률을 고려하면 사실상 '백기투항'한 것으로 평가된다.

생방송으로 대통령 담화를 지켜보는 노란 조끼 시민들 사이에서도 마크롱이 '최저임금 100유로 인상' 부분을 말할 때 '오~'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최저임금 인상은 마크롱이 여론 진정을 위해 재정경제부와 재계의 강력한 반발을 무릅쓰고 결정한 것이다.

브뤼노 르메르 경제장관은 이날 아침 라디오에 출연해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한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표명한 바 있다.

마크롱 정부가 노란 조끼에서 터져 나온 요구에 따라 최저임금을 올리기로 한 것은 현재 프랑스의 높은 실업률을 더 높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이런 양보들에도 불구하고 부유세(ISF)의 원상복구 요구를 마크롱이 거부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노란 조끼 시위가 이어질 '불씨'는 남아있다.

마크롱 정부는 부유층과 외국 투자자들의 투자 촉진을 내세워 기존의 부유세(ISF)를 부동산자산세(IFI)로 축소 개편하면서 사실상 부유세를 폐지한 바 있다.

부유세는 1980년대 사회당 정부가 분배정책의 주요 수단으로 도입한 세목으로, 프랑스에서는 작년까지 130만 유로(17억원 상당)가 넘는 자산을 보유한 개인에게 부과됐다.

그러나 마크롱 정부는 이런 부유세를 부동산 보유분에만 부과하기로 하고 자산에 대한 투자지분 역시 과세 대상에서 제외했고, 이는 좌파진영과 저소득층의 강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마크롱에게 '부자들의 대통령'이라는 달갑잖은 별칭이 생긴 결정적 계기도 부유세의 축소개편이었다.



이번 대국민담화에 대해 시위대 사이에서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고 AP통신이 밝혔다. 프랑스 남동부 마르장셀에서 TV로 대국민담화를 지켜보던 시위대 일부는 마크롱 대통령의 담화 발표가 다 끝나기도 전에 실망감을 표시하며 자리를 뜨기도 했다.

도미니크라는 이름의 노란조끼 시위대원은 "마크롱은 완전히 신뢰를 잃었다"며 "그는 물러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요는 "우리는 여기서 여러 날을 기다렸는데 담화는 고작 13분에 그쳤다"고 지적한 뒤 "국민들을 안심시킬 만한 요소들이 적었다. 마크롱은 큰 첫 걸음을 내딛기는 했으나 앞으로 해야할 일이 많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항상 여기에 있다"고 외쳤다.

프랑스 정가에서는 그러나 마크롱이 '노란 조끼'의 거센 기류에 사실상 항복에 가까울 정도로 양보를 한 만큼 시위 동력이 크게 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편이다.

최근 집회인 지난 8일 전국에서는 총 13만6천명이 모인 것으로 최종집계돼 첫 전국 시위였던 지난달 17일의 29만명보다 절반 가까이 감소하는 등 시위 규모는 감소세에 있기도 하다.

특히 크리스마스 휴가 시즌이 다가오고 있어 그동안 강력했던 '노란 조끼'의 분위기가 이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관측이 나온다.

50년 전 프랑스의 학생·노동자들의 대투쟁이었던 이른바 '68혁명' 당시에도 4∼5월 프랑스 정부를 거의 전복 직전의 위기까지 내몰았던 거리시위의 열기는 여름 바캉스철이 다가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급속도로 식어버린 전례가 있다.

yongla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