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서 '말레이계 기득권' 보장 요구 대규모 집회
(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61년 만에 첫 정권교체를 이뤄낸 말레이시아에서 말레이계의 기득권 보장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9일 일간 더스타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야당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과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PAS)은 현지 이슬람 단체 등과 함께 전날 쿠알라룸푸르 시내에서 집회를 진행했다.
경찰은 이번 집회에 최소 5만5천명이 참가했다고 밝혔다.
집회 참가자들은 "말레이여 영원하라" 등 구호를 외치면서 정부·여당이 인종이나 피부색, 가문, 민족 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유엔 인종차별철폐협약(ICERD)을 비준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말레이시아 인구의 다수(61.7%)를 차지하는 말레이계와 원주민은 ICERD에 가입할 경우 '부미푸트라'로 불리는 말레이계 우대정책이 폐기될 것을 우려해 왔다.
1957년 영국에서 독립한 말레이시아는 사회적 약자 보호 정책의 하나로 말레이계에 대입정원 할당과 정부 조달 계약상 혜택 등 특혜를 줬다.
이런 정책은 빈곤에 허덕이던 말레이계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극적으로 향상했으나, 민족간 격차가 완화된 뒤에도 계속 유지돼 중국계(20.8%)와 인도계(6.2%) 등에 대한 차별 정책으로 변질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올해 5월 총선에서 승리해 집권한 여당연합 희망연대(PH)는 부미푸트라 정책이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고 말레이계의 자립 의지를 꺾는다는 판단에 이를 완화하려다가 말레이계의 반발에 부닥쳤다.
논란이 거세자 마하티르 모하맛 총리가 이끄는 현 정부는 ICERD를 비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주최 측은 집회를 강행했다.
일각에선 당 지도부의 부패 의혹 등 악재에 시달리다가 야당으로 전락한 UMNO가 전통적 지지층인 말레이계를 재결집하려고 민족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날 집회에는 국영투자기업을 통해 천문학적 규모의 공적자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기다리는 나집 라작 전 말레이시아 총리와 부인 로스마 만소르 여사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hwangc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