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불상' 있었던 경주 이거사 터 무너진 탑·잡초만 무성
안내판 하나 없이 방치…경주시 "복원·정비하겠다"
(경주=연합뉴스) 손대성 기자 = "거기는 찾아가기 어려울낀데. 가도 별로 볼 것도 없고."
6일 오후 경북 경주시 도지동 마을에서 만난 한 주민은 청와대 불상이 있었다고 알려진 이거사 터 위치를 묻자 이같이 말했다.
도지동은 경주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마을이다. 경주와 울산을 잇는 7번 국도와 동해선 철길을 끼고 있다.
이거사 터는 지난 4월 보물 제1977호로 지정된 청와대 '경주 방형대좌 석불좌상'이 애초 있었다고 추정되는 절터다.
청와대 불상은 1912∼1913년께 경주금융조합 이사였던 오히라 료조(小平亮三·또는 고다이라 료조)가 당시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조선총독 관사가 있던 서울 남산 왜성대로 옮겼다.
이후 1939년 경복궁에 새 총독관저(현 청와대 자리)를 지으면서 현재 위치로 다시 이전됐다.
오히라 료조가 불상을 입수한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다.
2011년 별세한 이근직 경주대 교수 부인 주진옥 신라문화유산연구원 보존관리팀장이 연합뉴스에 제공한 일제강점기 자료 '신라사적고'(新羅寺蹟考)에 따르면 도지리(道只里) 이거사터 항목에 다이쇼(大正) 2년(1913) 중에 총독부로 불상을 이전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 때문에 청와대 불상이 애초 경주 이거사 터에 있었다는 설이 힘을 얻고 있다.
불상은 지난해 6월 문재인 대통령이 공관 뒤편을 산책하다가 불상 가치를 재평가해볼 것을 지시해 올 4월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보물 1977호로 지정됐다.
경주에서는 청와대 불상을 경주로 다시 돌려놓아야 한다는 여론이 퍼지고 있다.
경주시, 경주시의회, 경주문화재제자리찾기시민운동본부는 지난 달 7일 협약을 맺고 '경주 방형대좌 석불좌상'을 경주로 반환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작 불상 출토지로 거론되는 이거사 터는 관리가 되지 않아 엉망이었다.
자동차 길안내기나 유명 인터넷 포털사이트 지도에서도 이거사 터는 검색되지 않았다.
도지동에 있다는 사실만 알고 마을에 가 작은 안내판만 보고 찾아간 이거사는 옛 이거사와 이름만 같을 뿐 다른 사찰이었다.
마을 주민에게 물어 다시 찾아간 이거사 터는 마을에서 떨어진 밭에 방치돼 있었다.
안내판이나 보호책이 없고 주변은 경작이 이뤄져 어지러웠다.
사찰을 대표하는 탑은 파손돼 기단과 옥개석이 널려 있었다. 무너진 탑 사이로 풀과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한쪽 길이가 3m 넘는 기단이나 정교한 옥개석 모양으로 봤을 때 이중기단의 3층 석탑으로 상당한 크기와 수준을 자랑하는 탑임을 추정할 수 있다.
기단 안에는 큰 돌이 자리 잡고 있어 발굴 조사와 복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산기슭에는 돌로 된 불상인 석조여래좌상이 작은 보호각 안에 앉아있다.
전체적으로 마모가 심하고 머리를 후대에 만들어 시멘트로 붙여 놓아 본래 모습은 찾기 어렵다.
이 불상과 청와대 불상의 관련성도 앞으로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문화재청과 불교문화재연구소가 2015년 펴낸 '한국의 사지 현황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도지동 사지(절터)는 '이거사'나 '유덕사'로 추정된다.
문화재청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기록을 봤을 때 이거사는 통일신라부터 조선 후기까지 운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보고서에는 '석탑재는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어 복원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되고 석탑 제작 시기와 사리공 특이점으로 봐 문화재로 지정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돼 있다.
경주시 관계자는 "청와대 불상을 이거사에 영구 안치하기 위해 조례를 만들고 이거사지 복원과 정비에 필요한 예산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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