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훈의 골프산책] PGA투어에 부는 '용품 자유계약 선수' 바람
(서울=연합뉴스) 권훈 기자 = 타이거 우즈(미국)는 작년까지 17억 달러(약 1조8951억원)를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최근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추산한 금액이다.
이 가운데 우즈가 골프 대회 상금으로 받은 돈은 1억1천6만 달러(약 1천227억원) 뿐이다.
상금보다 후원 계약이나 광고 등으로 번 이른바 장외 수입이 훨씬 많다.
정상급 골프 선수에게 상금보다 많은 더 많은 장외 수입은 '훈장'과 같다.
골프 선수의 장외 수입 가운데 큰 몫은 용품을 쓰는 대가로 받는 돈이다. 특히 클럽 사용 계약은 골프 선수에게 적지 않은 수입을 안겨준다.
우즈도 전성기에 나이키 클럽을 사용하는 대가로 연간 2천만 달러(약 223억원) 정도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우즈뿐 아니라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더스틴 존슨(미국), 제이슨 데이(호주) 등 정상급 선수 상당수가 클럽 계약으로 적지 않는 돈을 번다.
하지만 올해 들어 클럽 계약을 마다하는 선수가 부쩍 늘었다.
특정 브랜드 용품과 계약 없이 쓰고 싶은 클럽을 쓰는 선수가 전에도 없지는 않았지만 '괴짜' 취급을 받는 소수에 불과했다.
올해는 양상이 다르다.
'클럽 자유 계약 선수'가 올해 메이저대회를 싹쓸이했다는 사실이 먼저 눈에 띈다.
마스터스 챔피언 패트릭 리드(미국), 디오픈 우승자 프란체스코 몰리나리(이탈리아), US오픈과 PGA챔피언십을 제패한 브룩스 켑카(미국)는 특정 브랜드 클럽과 계약 없이 입맛에 맞는 클럽을 사용한다.
리드는 드라이버는 핑, 아이언은 타이틀리스트와 캘러웨이 제품을 섞어 사용한다. 웨지는 이름도 생소한 회사 제품이고 오디세이 퍼터에 타이틀리스트 볼을 쓴다.
몰리나리는 드라이버를 포함한 우드는 테일러메이드, 아이언은 단종된 나이키 제품으로 디오픈을 제패했다.
지난 10월 제주에서 열린 더 CJ컵에서 우승했을 때 켑카의 가방에는 테일러메이드 드라이버와 미즈노 아이언, 타이틀리스트 보키 웨지, 스코티카메론 퍼터가 들어있었다.
미국 교포 선수 케빈 나(한국이름 나상욱)도 타이틀리스트와 계약을 파기하고 캘러웨이 드라이버를 사서 쓰는 모험을 감행해 화제가 됐다.
특정 브랜드와 사용 계약을 마다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특정 브랜드와 계약하면 경기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데 오히려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리드는 ""이 세상에서 14가지 골프 클럽과 골프볼을 모조리 어떤 선수에게 딱 맞게 만들어내는 회사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계약에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때그때 내 마음에 맞는 제품을 쓸 수 있다. 내가 마스터스를 제패할 수 있었던 원동력 가운데 하나"라고 덧붙였다.
PGA투어에서 통산 3승을 거둔 라이언 파머(미국)는 최근 팟캐스트에서 "사실 용품 계약은 돈이 안 된다"고 털어놨다.
"손에 맞는 클럽을 쓰는 게 더 나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그는 몇 년 전부터 특정 클럽 계약 없이 입맛대로 클럽을 골라 쓴다.
지금은 테일러메이드 드라이버에 스릭슨 아이언을 사용하는 파머는 "가장 큰 문제는 계약하면 온통 하나의 브랜드 제품만 써야 한다는 제약이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테일러메이드와 계약하면 드라이버, 아이언, 웨지, 퍼터, 볼까지 모두 테일러메이드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 특히 타이틀리스트, 캘러웨이, 테일러메이드 등은 용품 계약 때 볼도 자사 제품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에 목을 맨다.
이런 제약을 피하려면 선수는 특정 브랜드와 계약을 할 수 없다.
전보다 훨씬 커진 투어 대회 상금 규모도 '클럽 자유 계약 선수'가 많아지는 이유다.
파머는 "(내가) 클럽 계약을 해서 받을 수 있는 돈은 톱10 두번 입상해서 받는 상금과 비슷하다"면서 "차라리 계약 없이 입맛에 맞는 클럽을 써서 우승하는 게 더 남는 장사"라고 말했다.
PGA투어 대회 우승 상금은 적어도 10억원이고 메이저대회 우승 상금은 20억원을 웃돈다.
우즈나 매킬로이 등 클럽 사용 계약만으로도 100억원이 넘는 돈을 챙기는 특급 선수가 아니라면 클럽 계약이 더 손해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다만 상금 규모가 미국과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적은 국내에서는 아직 클럽 자유 계약 선수는 보기 어렵다.
한 클럽 업체 임원은 "대회 우승 상금만큼은 아니더라도 적지 않은 계약금에 안정적으로 클럽을 지원받을 뿐 아니라 다양한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전속 계약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khoo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