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가득한 '저장강박증' 가구 돕자" 지자체 조례 봇물

입력 2018-12-06 07:00
수정 2018-12-06 07:48
"쓰레기 가득한 '저장강박증' 가구 돕자" 지자체 조례 봇물

이웃까지 고통…자치법규 근거해 발굴·청소·관리까지 체계적 지원



(전국종합=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지난 3월 부산 북구 한 임대 아파트에 사는 A(78)씨 집은 온통 쓰레기로 뒤덮여 있었다.

저장강박증을 앓던 A씨는 누울 공간조차 없어지자 아파트 놀이터에서 잠을 잤다.

냄새가 아파트 전체를 뒤덮자 주민이 끊임없이 민원을 제기했다.

꿈적도 하지 않던 A씨는 구청에서 쓰레기를 치워주겠다고 계속해서 제안하자 마침내 동의했다.

A씨 집에서 나온 쓰레기는 75ℓ 봉투 100개와 100ℓ 봉투 50개를 가득 채웠다.

사회복지 공무원, 자원봉사자 54명이 3일에 걸쳐 벌레와 사투를 벌이며 청소를 했지만, 봉사자들에게 교통비와 목욕비 등은 지원되지 못했다.

기존에 배정된 복지예산으로는 자원봉사자들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저장강박증 가구 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 보니 민원이 들어오기 전에 지자체가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지원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이처럼 복지 사각지대를 개선하기 위해 부산 북구의회는 지난 9월 전국 최초로 저장강박증 의심 가구 지원조례를 제정했다.

구는 조례에 근거해 배정된 예산 500만원을 통해 저장강박증이 의심되는 17가구를 발굴, 집안 내부 청소를 통해 주거환경을 개선했다.

◇ 이웃까지 고통받는 마음의 병 저장강박증

저장 강박은 집안에 쓰레기를 쌓아두고 자신만의 세상에 스스로 고립시키는 마음의 병이다.

저장강박증은 본인뿐만 아니라 이웃 주민들도 악취나 비위생적인 환경에 고통받기 때문에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는 추세다.

지난해 5월 28일 서울시 노원구에서 40대 남성이 자신의 노모가 20년간 모아둔 쓰레기 더미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서울 영등포구가 발표한 '저장 강박 가구 개입을 위한 사례관리 지침서'를 보면 2016년 7월 기준 t 단위로 쓰레기가 쌓여있는 집은 서울에만 312곳에 이른다.

특히 고령 인구가 많은 지역일수록 저장 강박 가구는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저장강박증 체계적으로 돕자…조례제정 잇따라

부산 북구가 조례제정을 통해 저장강박증 가구 지원사업에 나선 이후 부산 기초의회는 잇따라 저장강박증 의심 가구 지원조례 제정에 나섰다.

부산 서구, 북구, 중구, 해운대구가 뒤이어 조례를 제정했다.

저장 강박 증상이 있는 주민들을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쓰레기를 치워준 뒤 사후관리까지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다.

부산뿐만 아니라 전북 군산시도 조례제정을 통해 저장강박증 가구 돕기에 나섰다.

조례제정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주거환경개선 사업을 통해 꾸준하게 저장강박증 지원하는 사례도 있다.

서울 강남구는 '가(家) 클린(Clean)' 사업을 통해 저장강박증을 앓는 저소득 홀몸 어르신을 지원해주고 있다.

구는 지난해 만 65세 이상 저장강박증 홀몸 어르신 490명을 발굴해 이 가운데 40명을 선정해 지원한 바 있다.

지원 범위와 대상을 두고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저장강박증 지원 범위를 두고 의회에서 의견이 일치를 보이지 않아 조례제정이 무산된 사례도 있다.

부산 동구의회에서는 병원에서 저장 강박 판정을 받은 사람만 지원해야 한다며 일부 의원이 반대표를 던져 조례제정이 무산된 바 있다.

조례를 발의한 자유한국당 김선경 의원은 이에 반발, 의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기도 했다.



조례를 최초로 발의한 북구의회 자유한국당 김효정 의원은 "조례를 통해 지자체가 저장강박증 문제에 대해 꾸준하게 관심을 가지길 바라는 차원에서 제정을 추진했다"며 "저장강박증 문제는 단발적인 복지사업으로 끝나기보다 지속해서 관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handbrother@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