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계속되는 노란 조끼 물결에 또다시 '시험대'(종합)
총리, 유류세 인상 유예 등 추가대책 내놨지만 실효성 의문
노란 조끼 "대책 미흡…주말에도 대규모 집회 계속"
유권자 72% "노란 조끼 지지"…마크롱 지지율 20%대로 '바닥'
르몽드 "무능과 오만…통치방식 안 바꾸면 위기 타개 어려워"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한 달가량 이어지고 있는 '노란 조끼' 집회와 최근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과격 폭력시위 등으로 또다시 정치적 시험대에 직면했다.
유류세 인상에 항의하는 전국 규모의 '노란 조끼' 집회의 파괴력이 예상을 훨씬 넘어서며 여론의 지지를 받는 가운데, 폭력시위로 얼룩진 파리 중심가의 모습은 마크롱의 바닥을 치는 낮은 지지율과 연결되면서 프랑스 정부의 대처능력 부족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총리가 부랴부랴 유류세 인상 6개월 유예라는 카드를 제시했으나 '노란 조끼' 측은 집회를 계속 이어가겠다고 밝혀 마크롱이 정치적 난국을 어떻게 타개할지 주목된다.
토요일인 지난 1일(현지시간) 샹젤리제 거리와 에투알 개선문 등 파리 최대 번화가에서 벌어진 '노란 조끼' 시위는 복면을 쓴 무리가 쇠파이프와 도끼 등을 들고 거리로 나서 차량과 건물에 불을 지르는 등 폭력 사태로 번졌다.
개선문 안 전시공간이 파괴되고 개선문 외벽에는 '마크롱 퇴진', '노란 조끼가 승리할 것'이라는 낙서로 도배됐고, 파리 시내 곳곳에서는 차량이 불에 타고 샹젤리제 거리 곳곳의 고급 상점과 레스토랑이 폭력시위대에 의해 파손됐다.
중산층 시민이 인터넷을 통해 자발적으로 모여 평화적 시위를 하는 이른바 '노란 조끼'(Gilets Jaunes) 운동과 극우·극좌세력의 과격 폭력시위를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지만, 최근의 반(反) 마크롱 정서와 연일 이어지는 대규모 시위가 마크롱의 목에 비수를 들이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노란 조끼 운동은 단순히 현 정부 정책에 불만이 큰 유권자들의 구심점 없는, 형태가 불분명한 집단일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전국적인 규모의 대형 연속 집회로 불어났고, 최근에는 극심한 폭력시위 양상까지 보이자 프랑스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 운동이 평소의 정치적 성향과 거의 관계없이 유권자들의 고른 지지를 받는 것은 마크롱에게는 특히 뼈아픈 일이다.
여론조사기업 해리스인터랙티브가 파리의 폭력시위 사태 다음날인 2일 유권자 1천16명을 대상으로 긴급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72%가 '노란 조끼' 운동을 지지한다고 답했고, 90%는 정부의 조치들이 사안의 위중함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단, 응답자의 85%는 폭력시위에는 반대한다고 밝혔다.
프랑스 정부가 대규모 집회 전후로 부랴부랴 내놓은 대책들이 여론을 진정시키는 효과도 미미했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달 중순 노란 조끼 전국집회에 앞서 저소득층 자가용 운전자 세제 혜택, 디젤차 교체 지원금 확대, 에너지 보조금 수혜 가구 확대 등 '민심 달래기' 정책들을 내놨지만, 효과는 거의 없었다.
이후 프랑스 정부는 유류세 인상 폭과 시기를 국제 유가와 연동해 조정한다는 '당근'을 추가로 제시했으나 이 역시 성난 여론을 잠재우는 효과는 거의 없었다.
급기야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는 4일(현지시간) 생방송 담화를 통해 유류세 인상을 6개월간 중단한다는 추가 조치를 또 내놨다. 그러나 '노란 조끼' 운동의 대변인 격인 벤자맹 코시는 "과자 부스러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 빵을 원한다"면서 그동안 올려온 유류세를 원상복구 하라고 요구했다. 노란 조끼 운동은 오는 8일에도 전국에서 대규모 집회를 이어가기로 했다.
밑바닥 여론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정부의 경제정책 가운데 부유세 폐지와 유류세 인상 등에 대해 강한 불만을 품어왔다.
특히 유류세의 꾸준한 인상은 중산층 이하 차상위 계층과 화물트럭 운전자 등 차량에 생계를 의존하는 이들 사이에 마크롱이 '부자들의 대통령'이라는 인식을 더욱 굳어지게 했다.
평화 시위를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번 폭력시위가 마크롱 대통령이 서민층을 무시한 것에 대한 정당한 반응이라며 옹호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여론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했다.
동부 로렌 지방에서 지난 1일 파리 시위에 나온 샹탈(45)이라는 남성은 렉스프레스와 인터뷰에서 "우리 집은 매달 500유로(60만원 상당)씩 적자가 난다. 바캉스를 가지 못한 지 3년째"라면서 "이번 폭력시위는 마크롱의 침묵에 대한 응답으로,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마크롱이 '노란 조끼' 물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경우 국정 전반에 치명타를 입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프랑스여론연구소(IFOP)가 유권자 1천957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9~1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마크롱의 국정 지지도는 한 달 전보다 4%포인트 빠진 25%로 나타났다. 작년 5월 취임 후 최저치다.
특히 마크롱의 지지율 낙폭은 여러 직종 중에서 블루칼라노동자·소상공인 사이에서 한 달 만에 9%포인트가 급락해 서민층의 깊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마크롱이 집권한 뒤 사실상 처음 치르는 일종의 '중간평가'인 내년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여당 '레퓌블리크 앙마르슈'(LREM·전진하는 공화국)가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에 1위 자리를 내줄 것이라는 여론조사도 있었다.
프랑스의 다른 야당도 아닌 극우 정당이 1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은 극우를 꺾고 집권한 마크롱에게는 더더욱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노란 조끼 운동이 확대돼 지방과 농촌 유권자들의 민심을 계속 잃으면 2022년 마크롱의 대선 재선 역시 물거품이 될 수 있다.
프랑스 정부는 소통의 실패를 자인하고 변화를 약속했다.
필리프 총리는 4일 생방송 담화에서 "이번에 표출된 분노를 보거나 듣지 않으려면 맹인이 되거나 귀머거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와 집권당이 국민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했다면 앞으로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작 국민의 분노에 직면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총리를 앞세운 채 별다른 메시지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유력지 르 몽드는 이날 사설에서 "(마크롱의) 절대권력을 내세우는 권위적인 태도는 질서 확립도 못 하는 무능함으로 바뀌었고, 오만함과 정제되지 않은 발언들이 위기를 고착화했다"면서 "통치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현 국면을 타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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