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년멤버' 카타르 탈퇴…'60년 석유 카르텔' OPEC 저무나
OPEC 독점력 축소되고 비회원 미·러 영향 부상
다른 OPEC 회원국 도미노 탈퇴할지 관심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카타르가 내년 1월 1일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전격적으로 탈퇴하기로 하면서 국제 유가를 쥐락펴락하던 OPEC의 위상과 역할이 예전 같지 않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카타르의 하루 평균 산유량은 61만 배럴로 사우디아라비아의 5% 정도에 그친다.
카타르가 OPEC의 통제를 벗어난다고 해도 국제 원유 시장에 큰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지만 카타르가 1961년부터 가동된 OPEC의 '원년 멤버'라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는 작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에콰도르와 가봉이 OPEC을 탈퇴했다가 재가입한 적은 있었으나 창립 때부터 참여한 산유국이 탈퇴를 선언한 것은 카타르가 처음이기 때문이다.
사드 셰리다 알카비 카타르 에너지부 장관 겸 국영석유회사(QP) 사장은 3일 OPEC 탈퇴를 발표하면서 액화천연가스(LNG)에 집중하기 위한 장기 전략에 따른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카타르는 세계 최대 LNG 생산국으로 전체 LNG 생산량의 30% 정도를 차지한다.
알카비 장관이 선을 긋긴 했지만 카타르의 OPEC 탈퇴를 두고 사우디와 겪는 단교 갈등이 가장 유력한 이유로 거론된다. '사우디의 OPEC'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에너지 정책을 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는 것이다.
알카비 장관은 "OPEC을 탈퇴하면 OPEC의 합의(감산 또는 증산)에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정치·외교적 배경과 더불어 OPEC의 영향력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도 카타르가 'OPEC 탈출'을 과감히 결행한 이유라는 분석도 주목할 만하다.
최근 국제 원유시장은 사우디뿐 아니라 OPEC 회원국이 아닌 미국, 러시아의 영향이 급속히 커지는 추세다.
미국, 러시아가 원유 생산을 빠르게 늘리면서 이들 국가의 산유량이 사우디와 맞먹는 양까지 늘어나서다.
2016년 OPEC과 러시아 등 10개 OPEC 비회원 주요 산유국이 감산을 결정한 이후 OPEC의 단독 결정은 사실상 이뤄지지 않았다.
국제 유가는 과거처럼 OPEC의 합의가 아니라 사우디, 미국, 러시아 등 '빅 3' 국가의 말 한마디에 좌우되면서 나머지 OPEC 회원국은 들러리가 된 모양새다.
지난주 아르헨티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유가 시장의 관심사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회담이었다.
감산을 원하는 사우디와 증산하려고 하는 러시아가 어떤 합의를 이룰지에 촉각이 모였다.
미국, 러시아의 부상과 함께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예멘 내전 등으로 위축된 사우디의 정치적 입지도 OPEC의 역할이 약화한 요인으로 꼽힌다.
중동, 아프리카, 남미 산유국으로 구성된 OPEC을 대변해야 할 사우디가 오히려 자초한 악재를 해결하려고 미국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공공연히 사우디와 OPEC을 유가를 올리려고 담합이나 하는 집단으로 매도하면서 OPEC을 흔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살만 사우디 국왕에 전화로 산유량을 증가하라고 대놓고 요구하기도 했다.
미 법무부는 OPEC을 담합 혐의로 처벌하는 법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중동 산유국의 정치·경제에 깊숙이 개입한 서방에 맞서 비서방 산유국의 영향력을 강화한다는 OPEC의 설립 취지가 무색해진 상황이다.
카타르가 OPEC을 탈퇴한 숨은 배경도 이런 맥락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역내 맹주 사우디의 봉쇄와 포위를 돌파하고 '마이웨이'를 걸어야 하는 카타르로서는 미국의 지지가 절실한 형편이다.
따라서 카타르는 OPEC을 탈퇴함으로써 OPEC 독점력을 되도록 축소하려는 미국 정부의 정책 방향에 동참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
카타르가 던진 '작은 돌'이 파문을 일으켜 다른 OPEC 회원국의 도미노 탈퇴로 이어진다면 60년간 견고했던 '석유 카르텔'은 최대 위기를 맞게 된다. 이는 곧 사우디의 위상 추락으로 이어져 중동의 다극화로 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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