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조업체 기술직 사원 '파견회사'로 전직 급증

입력 2018-11-30 11:45
수정 2018-11-30 13:17
일본 제조업체 기술직 사원 '파견회사'로 전직 급증

'신규 사업' 제조업체 수요 늘고 기술자도 '한 회사서 정년은 위험' 인식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일본에서는 요즘 번듯한 제조업체에서 일하던 기술직 사원이 기술자파견회사로 전직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유력 인재알선 회사인 리쿠르트캐리어의 경우 제조업체에서 일하다 이 회사로 전직한 사람이 지난 8년간 9배로 늘었다. 기술자파견회사는 요즘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유력 기술자 파견회사의 작년 기술자 중도(전직) 채용은 테크노프로가 전년대비 32% 많은 2천737명, 메이테크가 전년대비 1.5배인 442명에 달했다. 밀려드는 기업의 기술자 파견요청을 소화하기 위해서다. 기업의 요청은 많은데 "인력이 부족해 일부 요청은 거부하고 있다"는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전에는 제조업체 보다 한등급 아래라는 의식이 강했고 '파견'이라고 내놓고 말하기도 부끄러워 했다"(유력 기술자 파견업체 간부)는 인력파견회사의 인기가 높아진 이유는 뭘까.



30일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따르면 기술혁신 속도가 빨라져 전문지식과 기능을 갖춘 파견사원을 즉시 써 먹을 수 있는 전력으로 활용하려는 기업의 수요가 늘어난데다 기술자들 사이에서도 "한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계속하는 건 위험하다"는 의식이 생겨 나고 있어서다. 다양한 분야의 기술을 익히고 싶어하는 기술자들의 의식도 한몫하고 있다.

제조업체가 신규 사업을 시작하려면 자사에는 없는 기능을 가진 기술자가 필요하다. 전직자를 채용하려면 시간도 걸리고 비용도 든다.

리쿠르트케리어의 아다치 에미 제조업담당 컨설턴트는 "2년 이내에 승부를 내야하는 신규 사업에 필요한 인재를 (기업이 자체적으로) 확보하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자동운전에 없어서는 안되는 카메라와 센서 기술자의 경우 기존 자동차 메이커에는 기능을 갖춘 기술자가 많지 않다.

파견회사는 이 점에 착안, 전기·전자업체에서 경험을 축적한 센서 기술자를 업종을 넘어 자동차 메이커에 보내준다.

파견회사 측이 첨단분야에 계속 인재를 파견해온 것도 시장확대에 기여했다. 테크노프로는 도요타자동차의 인공지능(AI) 개발분야 자본제휴 스타트업인 알벨트와 손잡고 1천명 규모의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를 양성중이다.

연구소에서의 장기개발은 아직 파견회사가 손대기 어려운 분야지만 유력 전기메이커 인사 담당자는 "앞으로는 첨단 고도분야의 업무도 파견회사에 의존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종신고용 기술자만으로는 현장의 수요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기술자들은 이 한계를 다른 형태로 받아 들이고 있다. 메이테크 채용담당 임원인 야베 데쓰야 이사는 "내 업무가 언제까지 있을지 불안해 하는 메이커 근무 기술자의 전직이 최근 몇년간 크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전직 사이트 'doda'의 오우라 세이야 편집장은 "리먼 사태 이전에는 메이커로부터의 전직자가 거의 없었지만 요즘은 연간 8천명 정도에 이르는 파견회사로의 전직자 중 3분의 1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늘었다"고 전했다.

전직시 파견회사 측이 제시하는 연봉도 최근 2년간 10% 정도 상승했다.

유수의 전기메이커에서 일하다 기술자파견회사로 전직한 한 남성(28)은 "40-50대가 됐을 때의 시장가치를 올리는데는 이 쪽이 낫다"고 말했다. 메이커는 기술자를 한 분야의 전문가로 육성하지만 파견회사의 경력 축적방식은 다르다.

굴지의 상용차 메이커에서 근무하다 메이테크로 전직한 사카모토 히로야(36)는 설계기술을 토대로 반도체 제조장비 메이커 등을 거쳐 지금은 공장자동화 분야 일을 하고 있다. 그는 "몇년 단위로 다른 회사에서 그때그때 필요한 기술을 연마했기 때문에 다양한 업종에서 일할 수 있게 됐다. 전에 다니던 직장에 있었더라면 모델 변경이 이뤄질 때 까지 10년 정도는 계속 개량작업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지노 다이 테크노프로 상무는 "전직자가 가장 원하는 건 안정"이라고 지적했다. "안정의 의미가 대기업에 근무하는 것에서 응용이 가능한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몇살까지 일할 수 있을까"도 새로운 불안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노부모 개호(환자가 고령자를 돌보는 일)와 일의 양립도 하나의 요인이다.

간토(關東)지방에 있는 제조업체에 근무하던 한 남성(45)은 올 1월 테크노프로로 전직해 부모님을 돌보면서 후쿠오카(福岡)에서 일하고 있다.

파견회사는 전국 각지의 기업에서 파견요청을 받기 때문에 근무지역을 고르기 쉽다. 파견회사 측도 채용시 "고향에서 일할 수 있다"는 걸 내세우기 시작했다. 테크노프로사의 경우 "제조업체에서 전직한 기술자의 10% 정도는 이주 목적의 전직"이라고 한다.

정년까지 근무하더라도 대부분의 회사원은 직급 정년에 걸린다. 은퇴는 늦어지는데 "승진이 멈춘 후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리쿠르트케리어 관계자)는 것이다. 파견회사는 메이커 처럼 관리직으로의 승진은 없지만 60세 이후에도 기술자로서 기능향상과 승급도 할 수 있다.

lhy501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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