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리·베토벤·세종대왕…뮤지컬로 만나는 역사적 인물

입력 2018-11-30 06:01
퀴리·베토벤·세종대왕…뮤지컬로 만나는 역사적 인물

"대중 인지도 큰 장점" VS "역사 단순 나열 땐 진부"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연말 뮤지컬 시장에는 유독 역사 속 실존 인물의 삶을 그린 창작 작품이 많다. 마리 퀴리, 베토벤, 랭보, 세종대왕 등이 줄줄이 무대로 오른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역사 속 인물의 인지도를 활용해 다양한 관객층에 다가가기 쉬울 뿐 아니라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창작진이 작품을 비교적 쉽게 풀어나갈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30일 뮤지컬 업계에 따르면 현재 공연 중인 뮤지컬 '1446'과 '랭보'는 각각 세종대왕과 프랑스 상징주의 대표 시인 아르투르 랭보의 삶을 다룬다.

지난달 5일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개막한 '1446'은 셋째 아들로 태어난 세종이 왕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시력 악화에도 한글 창제에 몰두하며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치는 모습을 그린다. '1446'은 한글이 반포된 해를 뜻한다.

그간 TV 드라마와 소설 등에서 끊임없이 활용한 세종이지만 이번 뮤지컬은 타고난 성군이 아닌 고뇌하고 번민의 과정을 거쳐야 했던 '인간 세종'의 모습에 집중한다.



제작사인 HJ컬쳐 한승원 대표는 개막 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역사적 인물을 다룰 때 찬양 일색의 '위인전' 같은 뮤지컬이 되지 않도록 주의한다"며 "세종이란 인물이 여러 장애물과 인간적 트라우마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해나가는지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대학로 TOM 1관에서 막을 올린 '랭보'는 방랑벽의 천재 시인 랭보와 10살 많은 동성 연인 폴 베를렌, 랭보의 둘도 없는 친구 들라에의 여정을 그린다.

두 시인이 각자 시에 매료된 모습, 베를렌이 다툼 끝에 랭보에게 총을 쏜 사건 등이 무대로 옮겨졌다.

같은 소재를 다룬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주연 영화 '토탈 이클립스'에 비해 뮤지컬 '랭보'는 두 동성 예술가의 사랑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서로의 시에 입맞춤하는 모습 등으로 두 사람 관계가 암시된다.

시인들이 남긴 명시를 활용한 대사와 뮤지컬 넘버(곡)가 작품의 낭만성과 서정성을 높인다.

지난 27일 종로구 JTN아트홀 1관에서 개막한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는 베토벤이 조카 카를의 양육권을 놓고 제수 요한나와 벌인 법정 공방을 모티브 삼아 만든 팩션(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장르) 뮤지컬이다.

허구의 여인 '마리'와 어린 소년 '발터'를 등장시킴으로써 베토벤의 열정과 상처, 고뇌를 더 부각하려 했다.

추정화 연출은 "사람들이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사실은 잘 모르는 역사적 인물들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며 "베토벤의 집요했던 사랑과 고통, 화해로 이어지는 과정을 소극장 뮤지컬에 담아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 '방사능 연구의 어머니' 등으로 잘 알려진 마리 퀴리의 삶을 다룬 창작뮤지컬 '마리 퀴리'도 다음 달 22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막을 올린다.

노벨상을 두 번 수상한 마리 퀴리의 과학적 업적보다는 자신의 연구가 초래한 비극에 맞서는 한 인간으로서의 삶과 심리를 조명한다.

마리 퀴리가 발견한 라듐과 그 라듐에 피폭돼 목숨까지 잃은 '라듐 걸스'에 대한 이야기가 집중적으로 다뤄진다.

역사적 소재를 활용한 창작 뮤지컬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지혜원 공연평론가는 "창작 뮤지컬의 경우 관객들에게 정보나 인지도가 부족하기 마련인데, 누구나 아는 역사적 인물들을 내세울 경우 조금 수월하게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면이 있다"며 "유럽 역사적 인물을 다룬 라이선스 뮤지컬들이 흥행을 기록한 것도 이 같은 추세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다만 누구나 다 아는 소재를 다루다 보니 자칫 진부한 극이 될 수 있다는 약점도 공존한다. 역사 왜곡 및 인물 미화 논란도 팩션 작품이라면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공연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역사적 사실의 단순한 무대적 재현으로는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되기 어렵다"며 "소재는 과거 인물에서 쉽게 가져올 수 있겠지만 그를 통해 현대 관객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지 평론가도 "극으로 꾸미다 보면 사실과 사실이 아닌 부분의 혼선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 때문에 정치적·사회적 민감도가 다소 떨어지는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이 자주 무대에 오르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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