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껍데기 쌓인 패총은 쓰레기장 아닌 보물창고"
해남 군곡리 유적 중요성 커져…"보존과 활용 재고해야"
(해남=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옛날에 사람들이 먹고 남은 조개껍데기를 버린 곳이 패총(貝塚)이죠. 쓰레기장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고대인의 생활상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보물창고로 봐야 합니다."
김건수 목포대 박물관장은 28일 발굴조사 학술자문회의가 열린 해남 군곡리 패총(사적 제449호)에서 기자들과 만나 조개껍데기와 동물 뼈, 생선 가시를 설명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1983년 황도훈 해남문화원장이 목포대에 제보하면서 존재가 알려진 해남 군곡리 패총은 김해 회현리 패총, 경남 사천 늑도 유적과 함께 한반도 남부를 대표하는 패총 유적으로 꼽힌다.
목포대 박물관과 국립광주박물관이 1986년부터 1988년까지 조사해 주거지와 가마터 유적, 토기, 골각기(骨角器·뼈로 만든 도구), 중국 동전인 화천(貨泉), 일본 야요이계 토기를 찾으면서 고대 동아시아 해상 거점으로 주목받았다.
아울러 전남 지역에서는 청동기시대 후기와 삼국시대를 잇는 유적이 나오지 않았는데, 철기시대 유적인 군곡리 패총이 등장하면서 공백기가 사라졌다.
지도를 보면 군곡리 패총은 해남읍에서 땅끝으로 가는 지점에 있다. 배를 타고 해남과 진도 사이에 있는 해협인 울돌목을 지나려면 경유해야 한다.
자문회의에 참가한 이정호 동신대 교수는 "군곡리 패총은 한반도 서남해안 루트 꼭짓점에 해당한다"며 유적의 지리적 특성을 강조했다.
김 관장은 "과거에는 군곡리 유적 근처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을 것"이라며 "바다로 교류한 세력이 조성한 요충지"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목포대 박물관이 약 30년 만에 발굴조사를 재개한 군곡리 패총 유적은 구릉과 평지로 구성되는데, 구릉에서 경사면을 따라 조개껍데기를 버린 양상이 드러났다.
조사를 통해 나타난 패각층은 높이 3m, 길이 15m, 너비 3m. 굴과 전복은 물론 꼬막, 바지락, 피조개, 백합처럼 현대인도 즐겨 먹는 조개의 껍데기가 무덤처럼 수북이 쌓였다. 살을 꺼내기 위해 옆면을 깬 소라 껍데기들과 몸길이가 1m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민어 등뼈도 나왔다.
아울러 다양한 골각기와 복골(卜骨·점치는 데 사용한 뼈), 푸른색 유리구슬, 제주도 현무암을 넣어 만든 항아리 조각도 출토됐다.
김영훈 목포대 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패총을 '타임캡슐'에 비유하면서 2천 년 전 사람들의 생활상을 유추할 수 있는 풍부한 자료가 패총에 묻혔다고 역설했다.
그는 "다른 패총 유적과 비교하면 군곡리는 개발되지 않아 잘 보존됐는데, 발굴 지역은 사적 지정 면적의 3%도 되지 않을 것"이라며 "조사 지역을 확대하면 더 많은 사실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차례 진행된 발굴조사로 중요성이 커진 군곡리 패총의 과제는 체계적 정비계획 수립과 활용이다. 발굴조사 기간이 아니라면 패총에 가도 유적이 보이지 않아 실체를 알 수 없다.
김 관장은 "지석묘나 고분은 눈에 들어오지만, 패총은 실물이 드러나지 않는다"며 "이번 조사가 유적 보존과 활용 방안을 재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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