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뚫린 초연결사회] ①화재 한 건에 드러난 IT강국 민낯…곳곳에 허점(종합)

입력 2018-11-27 11:18
[구멍뚫린 초연결사회] ①화재 한 건에 드러난 IT강국 민낯…곳곳에 허점(종합)

정부·업계 대응태세 부실…소방법 등 관리도 허술

전문가들, "5G 시대 대비해 엄격 관리하고 우회망·백업 확대해야"



[※ 편집자 주 = 네트워크로 사람, 데이터, 사물 등 모든 것을 연결하는 초연결사회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서울 KT[030200] 아현지사 화재는 'IT(정보통신) 강국'을 자부하는 우리나라가 한 번의 사고로 일시에 마비될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입니다. 연합뉴스는 다음 달 5G(5세대 이동통신) 서비스 상용화를 앞두고 초연결사회의 현황과 문제점, 전문가 제안 등 담은 기획물 4편을 제작, 일괄 송고합니다.]

(서울=연합뉴스) 전준상 기자 = 주말인 지난 24일 발생한 KT 아현지사의 통신구 화재사고는 이틀 넘게 서울 서대문·마포·용산·중·은평구 등 5개 구와 경기 고양 시민 일부의 생활에 큰 불편을 초래했다.

이들 지역에서는 유·무선 전화 통화나 IPTV 시청 같은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식당·커피숍의 카드결제, 현금지급기 사용, 병원내 환자진료 등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서 차질이 빚어졌다.

특히 시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경찰청·소방청·국방부의 일부 통신까지 장애가 발생하기도 했다.

1994년 서울 종로5가와 대구 지하통신구 화재, 2000년 서울 여의도 전기통신 공동구 화재 등 통신 마비 사태를 수차례 겪었음에도 'IT 강국'이라는 위상이 무색할 정도로 통신망 곳곳의 허점을 노출한 셈이다.



먼저 이번 사고로 업계와 정부가 만일의 통신 사고에 안일하게 대처해온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번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가 의외로 큰 피해를 가져온 것은 KT 아현지사가 이른바 '허브(hub) 지사'였기 때문이다.

아현지사는 혜화·구로만큼은 아니지만 서울 서대문·중·마포구 일대로 연결된 16만8천 유선회로와 광케이블 220세트가 설치된 곳이다.

이번처럼 통신망이 훼손됐더라도 다른 망을 거쳐 우회할 수 있도록 이중화 작업을 했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KT는 전국에 아현지사와 같은 곳을 56곳 갖고 있는데, 이 중 29곳만 백업해 놓고 있다. 나머지는 위험에 노출돼 있던 셈이다.

통신지사들은 A·B·C·D 등급으로 지정돼 있는데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KT 아현지사는 의무적으로 백업이 필요없는 D등급이었다는 게 이유였다.

KT가 민영화 이후 수익성과 효율성 강화에 초첨을 맞추면서 이번과 같은 통신대란에 허점이 생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원을 대폭 줄이고 시설투자와 관리를 소홀히 하면서 안전과 관련된 업무를 비정규직에게 맡긴 것이 사고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KT아현지사는 마포구·서대문구·중구·용산구 등을 담당하는 주요 거점인데도 주말 출근자는 2명에 불과했다. 2002년 민영화 이후 국사·지사·지점을 통폐합하면서 이 곳도 '폐쇄형 전화국'으로 강등돼 지점장 등 팀장급 이상 관리자가 없는 전화국급으로 축소됐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26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KT는 민영화 이후 통신의 공공성보다 수익성 극대화 쪽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며 "통신의 공공성 개념을 확충하는 관점에서 접근해 제도적 장치를 어떻게 할지 고민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느슨한 소방법 규정도 도마 위에 올랐다.

통신업계에 따르면 서울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에 깔려있는 통신구는 수백㎞에 이른다. 통신구는 통신케이블과 전화회선 매설을 위해 지하에 설치된 시설물이다.

이번 화재가 발생한 아현지사 지하 통신구에는 겨우 소화기 1대만 비치돼 있을 뿐 스프링클러도 설치되지 않았다. 관리는 허술했지만, 그렇다고 KT가 규정을 어긴 것은 아니다. 스프링클러·소화기·화재경보기 등 '연소방지설비' 의무설치 대상이 아니었다. 소방법에 따르면 지하구 길이가 500m 이상이고 수도·전기·가스 등이 집중된 공동지하구에는 스프링클러·화재경보기·소화기 등 연소 방지시설을 의무적으로 구비해야 한다.



반면 아현지사 통신구는 수도·전기·가스가 없는 통신회로와 케이블만 설치된 단일 지하통신구였다. 길이도 150m로, 의무설치 대상에서 제외됐다.

화재사고 여파가 서울 강북 중심 일대 데이터 통신을 두절시킬 정도로 컸지만 천재지변 또는 고의적 방화나 테러 등 외부 위협으로부터 사실상 방치돼왔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혜화·구로 등 KT 메인국사와 목동 데이터센터 등 핵심시설은 주요 국가기반 시설로 지정돼 매년 정부로부터 안전점검을 받는다. 반면 아현지사의 안전관리 등급은 D등급이다. 메인국사를 단순히 이어주는 경유지이기 때문이다. KT가 이곳을 자체적으로 관리했던 이유다.

KT 통신국사는 총 56개로, 이 중 국가가 관리하는 A, B, C등급(29개)을 제외한 27개 국사는 아현지사처럼 자체 관리하는 D등급이다. 이런 사고가 언제 어디서든 재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경찰·소방청·국방부 등 국가기관은 KT통신망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처럼 단 5개 구를 담당하는 곳이 아닌 혜화나 구로의 통신망에서 사고가 났을 경우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클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오는 12월 5G(5세대 이동통신) 서비스가 상용화하면 부실한 통신설비 관리는 보다 끔찍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5G 시대에는 자율주행차 기술은 물론 IoT(사물인터넷), 스마트 홈 서비스 등이 본격화한다.

즉 5G 시대에는 자동차, 건물, 가전기기 등 모든 것이 네트워크에 연결돼 스스로 작동하게 되는데, 예고 없는 통신 장애가 상상을 초월한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통신망 장애로 자율주행차가 혼잡한 시내나 고속 주행하던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서버리거나 자율주행 철도가 멈춘다면 대형 인명사고까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이번 사고가 일어난 이후지만 정부와 업계가 곧바로 대책 마련에 나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6일 통신사가 자체 점검하는 D급 통신시설을 포함해 중요 통신시설 전체를 대상으로 실태 점검에 착수해 연말까지 통신망 안전대책을 수립하기로 했다.

또 소방법상 설치가 의무화돼 있지 않은 500m 미만 통신구의 경우에도 통신사와 협의해 CCTV, 스프링클러 등 화재 방지시설 설치를 추진하기로 했다.

아울러 향후 재해 발생 시 피해 최소화를 위해 통신 3사 간 이동 기지국 및 와이파이를 상호 지원하는 등의 방안 마련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런 대책과 함께 향후 유사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통신망에 보다 엄격한 법규를 적용하는 등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국가기간망 사업자인 KT를 포함한 통신사업자들이 시설의 중요성에 걸맞은 보안의식을 갖고 만일의 사태에 대한 준비를 한층 철저히 해야 한다는 게 업계 안팎의 조언이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5G시대의 데이터량을 뒷받침해주기 위해선 기지국과 기지국을 연결하는 광케이블도 더욱 촘촘해질 수 밖에 없다"며 "따라서 통신구 등의 관리를 보다 엄격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통신전문가는 "KT 통신장애를 계기로 긴급 상황에 대비해 총체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며 "유선 우회망 확대는 물론 긴급 사태에 대비해 비교적 자유롭게 투입할 수 있는 무선 기지국과 중계기 등 백업 장비 확충을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IT업계 관계자는 "통신기술 발전과 함께 안전이나 보안 취약점은 늘 도사리고 있다. 물리적 안전이나 정보보안이 붕괴되면 순식간에 일상이 마비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초연결사회로 갈수록 더욱 안전과 보안은 중요하다는 교훈을 던진 것"이라고 경고했다.

chunj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