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 인류무형유산 첫 남북공동등재…"평화·화해위한 결정"(종합2보)
남북 각각 신청했다가 '평화·화해' 내세운 유네스코가 공동 등재 결정
한국 20번째·북한 3번째 유산…명칭은 '씨름, 한국의 전통 레슬링'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이상현 기자 = 한반도 고유의 세시풍속 놀이 '씨름'이 사상 처음으로 남북 공동 인류무형문화유산이 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인류무형문화유산, 세계기록유산을 통틀어 남북이 함께 등재한 첫 사례다. 남북은 아리랑과 김장문화(김치 만들기)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보유 중이나, 2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각각 대표목록에 이름을 올려 공동 등재는 아니었다.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 위원회(무형유산위원회)는 26일 아프리카 모리셔스 수도 포트루이스에서 개막한 제13차 회의에서 남북의 '씨름'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했다.
정식 명칭은 '씨름, 한국의 전통 레슬링'(Traditional Korean Wrestling, Ssirum/Ssireum).
무형유산위원회는 이례적으로 28∼29일로 예정된 대표목록 심사에 앞서 개회일에 씨름 공동 등재 안건을 상정한 뒤 24개 위원국 만장일치로 등재를 결정했다.
위원회는 "남북 씨름이 연행과 전승 양상, 공동체에 대한 사회적·문화적 의미에서 공통점이 있다"며 "평가기구가 남북 씨름을 모두 등재 권고한 점을 고려해 전례에 없던 개별 신청 유산의 공동 등재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위원회는 이번 결정이 "평화와 화해를 위한(for peace and reconciliation)" 차원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우리나라는 '대한민국의 씨름(전통 레슬링)'(Ssireum, traditional wrestling in the Republic of Korea),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씨름(한국식 레슬링)'(Ssirum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이라는 명칭으로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했다.
우리 정부는 2016년 3월 등재 신청서를 제출했고, 북한은 2016년 12월 에티오피아에서 개최된 제11차 무형유산위원회에서 등재하고자 했으나 '정보 보완' 판정을 받아 작년 3월 신청서를 수정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프랑스 파리에서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만나 씨름의 공동 등재를 논의했고, 남북 정부는 각각 아줄레 사무총장에게 공동 등재 요청 서한을 제출했다.
무형유산위원회는 두 종목이 사실상 동일하다고 판단하고, 남북의 의지와 국제사회 협력을 인정해 공동 등재 결정을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나라는 과거에 '매사냥'이 아랍에미리트 주도로 등재될 때 참여했고 '줄다리기'를 베트남·캄보디아·필리핀과 공동 등재했으나, 애초에 신청서를 함께 작성해 씨름과는 과정이 다르다.
우리나라 국가무형문화재 제131호인 씨름은 두 사람이 샅바를 잡고 기술을 사용해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경기로, 각종 문헌·회화 등에 나타나 명확한 역사성이 확인된다.
씨름은 명절이나 축제 기간에 열리는데,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씨름판 구성과 기술에 우리나라 기예로서의 독자성과 표현미가 남아 있으며, 교육과 지역 공동체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승됐다.
무형유산위원회는 등재 결정문에서 '대한민국의 씨름'에 대해 "씨름은 국내 모든 지역의 한국인들에게 한국 전통문화의 일부로 인식된다"며 "중요한 명절에는 항상 씨름 경기가 있어 한국인의 문화적 정체성과 긴밀히 연관돼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북한 씨름에 대해서도 정체성을 언급하면서 "사람들은 어릴 때 자신의 아버지, 할아버지, 이웃에게 배운다"며 "사회 모든 차원에 깊게 뿌리박힌 유산으로 사회적 조화와 응집력을 강화한다"고 강조했다.
씨름은 대한민국의 20번째 인류무형문화유산이다. 우리나라는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2001)을 시작으로 강릉단오제(2005), 강강술래·남사당놀이·영산재·제주칠머리당영등굿·처용무(2009), 가곡·대목장·매사냥(2010), 택견·줄타기·한산모시짜기(2011), 아리랑(2012), 김장문화(2013), 농악(2014), 줄다리기(2015), 제주해녀문화(2016)를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했다.
북한은 씨름의 등재로 인류무형문화유산이 아리랑(2014), 김치 만들기(2015)를 포함해 3건으로 늘었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명절에 공동체에 집중된 에너지를 확 분출하는 놀이가 씨름"이라며 "남북 공동 등재를 계기로 씨름이 세계적 무형유산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외교부는 이번 공동 등재 성사를 우리 당국의 제안을 시작으로 한국과 북한, 유네스코의 사이의 긴밀한 외교 협력이 일군 성과로 평가했다.
등재 결정과 관련한 대 언론 브리핑에서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가 먼저 공동 등재를 요청했다면서 "올해 상반기 이병현 주유네스코 대한민국대표부 대사가 유네스코 사무국, 김용일 유네스코 북한 대사와 이 문제를 협의했다"고 설명했다. 시점은 1차 남북정상회담(4월 27일) 이후로 전해졌다.
북한은 우리의 초기 제안에 상당히 망설이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 접견 당시 공동 등재에 강한 의지를 보이면서 북한의 태도도 '호응'하는 방향으로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당국자는 "문 대통령의 지난달 16일 유네스코 사무총장 접견 계기 씨름 공동 등재 논의가 있었다"며 "후속 조치로 사무총장이 지난 15∼17일 평양에 특사를 파견했고, 북측이 요청에 화답해 이뤄졌다. 결국 남한과 북한, 유네스코가 공동으로 노력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미 별도로 등재 신청해 각종 절차를 밟은 상황에서 공동 등재로 전환하려면 관련국의 이해를 구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도 유네스코 사무국, 아줄레 사무총장, 이병현 대사, 유네스코 대표부 등의 노력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우리의 취지에 공감한 국제기구와 국제사회의 적극적 협력으로 (등재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남북 문화유산 교류에도 새로운 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psh59@yna.co.kr, hapy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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