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전방위 압박 통했나…대만인들 '독립'보다 '안정' 택해

입력 2018-11-25 13:21
수정 2018-11-25 15:15
中 전방위 압박 통했나…대만인들 '독립'보다 '안정' 택해

차이잉원 '탈중국화' 정책에 피로감…탈원전 등 정책 실패·경기 부진도 영향



(타이베이·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김철문 통신원 = 대만인들의 독립 의지를 가늠할 정치적 이벤트로 세계적으로 눈길을 끈 대만의 올림픽 참가 명칭 변경 국민투표가 결국 부결됐다.

동시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도 대만 독립을 지향하는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이끄는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이 야당인 국민당에 처참한 패배를 당했다.

독립 추구 성향의 차이 총통의 2016년 집권 후 양안 관계(중국과 대만의 관계)가 급속히 악화한 가운데 다수의 대만 유권자들이 실익 없는 독립 추구보다는 안정 쪽을 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4일 치러진 대만 국민투표에서 2020년 도쿄올림픽을 포함한 국제 스포츠 대회에 '차이니스 타이베이'가 아닌 '대만'으로 참가하자는 안건은 476만여명의 동의를 얻는 데 그쳐 전체 유권자 1천970여만명 중 25% 동의를 얻는 데 실패해 부결됐다.

찬성 세력이 강하게 결집하면 통과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관측도 제기됐지만 결과적으로는 유권자들이 양안 관계를 격랑으로 몰고 갈 '위험한 안건'에 분명한 거부 의사를 밝힌 셈이 됐다.

전 중국사회과학원 대만연구센터 주임 위커리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이번 결과는 평화로운 양안 관계에 관한 대만인들의 바람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양안 관계에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만 독립'을 강령으로 한 민진당 소속인 차이 총통은 집권 후 '하나의 중국' 원칙에 모호한 입장을 견지하는 가운데 선명한 '탈중국화' 정책을 폈다.



이에 맞서 중국은 경제·외교·군사 등 전방위적으로 차이잉원 정부를 압박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대만 인근에서 수시로 무력시위성 군사 활동을 벌였고, 몇 되지 않는 대만 수교국들이 대만과 단교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특히 중국은 올림픽 참가명 변경 국민투표를 '변형된 독립 기도'라고 규정하면서 대만이 독립을 선언한다면 무력을 동원해 점령할 수 있다고 공공연히 위협했다.

중국은 그간 홍콩과 같은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원칙을 바탕으로 대만과 평화적인 통일을 추진한다는 기본 입장을 견지해왔으나 차이 총통 집권 이후 '무력 통일' 위협이 매우 노골화됐다.

웨이펑허(魏鳳和) 중국 국방부장은 지난 9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미중 외교안보 대화를 마치고 "대만이 중국으로부터 분열되면 미국이 남북전쟁 때 그랬듯이 모든 대가를 감수하고서라도 조국 통일을 수호할 것"이라며 초강경 입장을 천명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은 또 경제적으로도 대만으로 향하는 본토 관광객 숫자를 줄이는 등 경제 교류 규모를 축소함으로써 대만 경제에 타격을 주려 시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중국은 '양안은 한 가족'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대만인들을 정부와 분리해 적극적으로 포섭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나아가 이번 선거에서 중국은 민진당의 패배를 유도하기 위해 적극적인 '여론 공작'에 나섰다는 의혹도 받는다.

민진당은 중국이 인터넷에서 대만 정부와 자기 당 후보들을 악의적으로 비난하는 글들을 조직적으로 유포하면서 선거 결과에 영향을 끼치려 한다고 의심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이 같은 의혹을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적대 관계에 있거나 분쟁 중인 상대방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해 자국에 유리한 정책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은 중국의 전통적인 외교 전략이다.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후 단체 관광객 송출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한국에 노골적인 정책 변화 압력을 가했고, 무역전쟁 중인 미국을 향해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기반인 '러스트 벨트'(Rust Belt)와 '팜 벨트'(Farm Belt)를 집중적으로 겨냥한 고율 관세 목록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만 유권자들이 악화일로를 걷는 양안 관계에 느끼는 피로감이 커지면서 민진당에 등을 돌리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양안 관계를 떠나서도 집권 3년차를 맞는 차이잉원 정부가 탈원전 등 민심에 반한 정책을 추진하는 등 중대한 실책을 거듭했고, '저혈압 환자'에 빗댈 정도로 만성적인 활력 부진에 빠진 대만 경제를 살리는 데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민심 이반으로 이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왕쿵이 대만 중국문화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이번 선거 결과는 차이 총통의 성과에 대한 대중의 강한 불만족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대중들은 표로써 차이 총통에게 교훈을 줬다"고 지적했다.

한 대만 전문가는 "전임인 마잉주 총통은 집권 2기 때 레임덕에 빠졌는데 차이잉원은 1기에서 레임덕에 빠져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대만에서는 차이잉원 정부가 지난 2년간 도대체 뭘 했는지 모르겠다는 식의 평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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