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군 반대론 직면한 카터, '남북미 대화' 카드…유엔司도 의제

입력 2018-11-25 06:00
수정 2018-11-25 13:30
철군 반대론 직면한 카터, '남북미 대화' 카드…유엔司도 의제

강경한 美의회 설득할 '명분' 필요…주한미군 철수+한반도 긴장완화 연계

취임 첫해부터 검토하다 한미정상회담 전후 자카르타 회담 극비리 추진



(서울=연합뉴스) 박인영 기자 = 1979년 6월30일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놓고 박정희 대통령과 격한 '설전'을 벌인 지미 카터 대통령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대선과정에서 내건 주한미군 철수 공약을 반드시 이행하겠다고 호언했지만, 필사적인 반발 기세를 보이는 박정희 대통령과 부정적 여론이 팽배한 미국 의회를 설득하는 건 '난제 중의 난제'였다.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을 철수한다는 큰 틀의 원칙을 살리면서도 남북간의 군사력 균형이 급격히 무너지며 한반도에 긴장이 조성되는 것을 막을 '묘안'이 절실했다.

워싱턴으로 돌아온 카터 대통령은 즉각 외교참모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복수의 안(案)을 검토할 것을 지시했고, 열흘 뒤쯤 보고서가 집무실 책상에 올라왔다.

보고서에는 모두 네 가지의 선택지가 들어있었다. 첫번째는 주한미군 철수를 계획대로 진행하되 1981년 철군 문제를 재검토하는 안, 두번째는 두 개의 전투부대와 아이-호크 대대, 지원병력을 1980년까지 철수하고 2사단의 남은 병력 철수는 1981년 재검토하는 안이었다. 세번째는 지원병력을 철수하되 전투부대 철수를 유보하고 남북한 군사력 균형 회복과 한반도 긴장완화 진전에 따라 철군규모를 조정하는 안이었다. 네번째는 철군을 연기하고 1981년 초에 철군 문제를 다시 검토하는 안이었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 카터는 결국 세번째 안을 낙점했다. 철군의 기본원칙을 지키면서도 남북 대화와 한반도 긴장 완화의 진전도에 따라 철군 문제를 조정하는 '유연성'을 가미한 절충안이었다.

카터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와 남북 대화를 연계한 것은 미국 의회와 군(軍) 내부에서 강하게 일고 있었던 철군 반대론을 누그러뜨릴 '명분'을 확보하는데 주안점이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당시 미국 의회에는 미·소간 SALTII 협정 비준이 또 하나의 뜨거운 이슈로 부상해있었다. 카터와 소련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서기장이 같은 6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서명한 이 협정을 놓고 미국 의회의 기류는 싸늘했다. 샘 넌ㆍ존 글렌ㆍ하워드 베이커 등 유력 상원의원들이 소련의 호전적 태도에 여전히 불신을 표명하고 인권 상황과도 연계지으면서 비판적 태도를 견지해왔다.

이들은 같은 맥락에서 북한의 대남 위협적 전투태세 등을 문제 삼으면서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을 철수하려는 카터의 계획에 반대했다. 카터 대통령으로서는 주한미군을 철수해도 좋을 만큼 한반도 긴장완화가 돼있음을 보여줄 '실질적 증거'가 필요했고, 그 방편으로 남북대화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볼 수 있다.

브레진스키 보좌관은 이 세번째 안에 대해 "한반도 긴장을 줄이려는 노력에 북한이 적극 동참할 의지가 있는지에 따라 추가 철군을 재개하는 것은 우리에게 광범위한 외교 맥락에서 향후 철군을 자리매김하고 진지한 남북대화의 재개를 촉구하는 우리의 입장을 강화하고 의회와 미국 국민에게 설득력있게 정책을 설명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주목할 대목은 카터 대통령이 이 같은 대화 카드를 기민하게 '실행'에 옮긴 점이다. 특히 한미정상회담을 전후해 남북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남북미 3자 고위급 회담을 갖는 방안을 추진한 사실이 백악관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이후 북한이 호응하지 않아 구체적 진전을 보지 못한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 주도로 이 같은 3자 대화가 추진됐다는 사실 자체가 외교사적으로 상당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카터 대통령이 남북미 대화 카드를 검토한 것은 1977년 취임 첫해부터였다. 브레진스키 보좌관이 1977년 8월 5일 '남북 간의 대화'라는 주제로 작성한 메모에는 카터 대통령이 남북미 3자 대화를 추진할 것을 지시한 내용이 나와 있다. 메모는 "대통령이 북한, 남한, 미국 간 3자 대화 가능성에 관한 당신의 보고서를 읽었으며, 단계대로 실행해 나가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유엔 사령부와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상호 관심사가 논의대상이 될 것임이 보고서에 적시된 점이 주목된다. 전체적으로 정전체제의 큰 틀을 바꿈으로써 한반도 긴장 구조를 해체하고 그 과정에서 주한미군 철수의 명분을 마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당시 카터 행정부가 시도한 남북미 대화는 현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남북미 정상회담이 모색되는 흐름과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당시 카터 대통령으로서는 주한미군 철수 공약을 이행하는 차원에서 한반도 긴장 완화와 남북 또는 남북미 대화를 활용한 측면이 커 보인다. 특히 당시에는 북핵이라는 변수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본토에 직접적 위협이 되고 있는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제거하는 목표로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고 있다. 특히 북미간 대화의 장이 열린 것은 미국의 주도가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 정부의 '중재'가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나아가 주한미군 철수문제는 공식적인 의제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

다만 북미간 비핵화 협상이 일정 궤도에 오르고 이와 병행해 평화체제 논의가 진전을 본다면 주한미군 지위와 역할 문제도 어떤 식으로든지 다뤄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mong071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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