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합의' 선례 남긴 반도체 백혈병 분쟁…과제도 '수두룩'
삼성 공식사과·이행 합의로 사실상 '종지부'…보상과정 갈등 재연 가능성
"이재용 '사회적 책임' 의지 반영"…정책·입법 후속조치 예상
(서울=연합뉴스) 이승관 배영경 기자 = "영화를 보면 마지막 장면에 이어 '엔딩 크레디트'가 나옵니다. 한 편의 영화가 작품으로 완성될 때까지 어떤 이들에게 '크레디트(빚)'를 졌는지 알리는 의미입니다."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를 이끈 김지형 전 대법관은 2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중재 판정 이행 합의 협약식에서 합의의 '주인공'인 반올림과 삼성전자[005930]에 감사의 뜻을 밝히며 이같이 강조했다.
지난 2007년 3월 삼성전자 기흥공장의 근로자 황유미 씨가 급성 백혈병으로 숨지면서 촉발된 이른바 '삼성 반도체 백혈병' 분쟁은 이날 협약식 서명으로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무려 11년간 '기싸움'이 이어지긴 했지만 전문가들이 중재안을 마련하고 이를 당사자들이 받아들임으로써 사회적 합의를 도출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성과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특히 '가해자'의 오명을 썼던 삼성 측으로서는 오랜 난제를 해소함으로써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부각시켰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이다.
올들어 삼성전자서비스의 협력사 직원 직접 채용, 노동조합 활동 보장과 함께 그룹 계열사 간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한 데 이어 수년간 실마리를 찾지 못했던 '반도체 백혈병 논란'도 마무리하면서 난제를 하나하나 해결했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올초 항소심 집행유예로 석방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고민하면서 해묵은 난제를 사회적 합의를 통해 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과제는 남아 있다. 삼성전자와 반올림이 중재안을 이행하겠다고 서명까지 했지만 구체적인 보상 과정에 들어갈 경우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재안에 피해 보상의 범위와 보상액 등이 명시되긴 했으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할 수도 있고, 지원보상위원회가 개별 피해자들을 상대로 판정을 내리는 과정도 간단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500억원 규모의 산업안전보건발전기금의 활용 방식 등에 대해서도 아직 완전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 외에 다른 삼성 전자계열사에서 발생한 피해에 대한 보상, 삼성 계열사의 해고자 문제, 노동조합 활동 보장 문제 등이 엮일 경우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확산할 수도 있다.
실제로 반올림의 황상기 대표는 이날 "삼성전기[009150], 삼성SDS, 삼성SDI등 다른 계열사에서도 유해 물질을 사용하다가 병든 노동자들이 있고, 국내뿐 아니라 해외 사업장에서도 비슷한 피해자들이 있다"면서 폭넓은 보상을 촉구했다.
또 이날 협약식에는 삼성 해고 노동자가 진입해 삼성전자 김기남 사장을 상대로 "해고자 문제도 해결하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이번 합의에 따라 정부와 정치권은 산업재해 보상, 산업현장 안전과 관련한 후속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경우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앞으로 선제적 예방 시스템과 피해자 조기발견 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국회 차원에서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법 제도 개선 등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형 위원장은 "앞으로 국가와 사회가 노동자 건강권이라는 기본적 인권 보장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면서 "정부를 대표하여 고용노동부, 국회를 대표하여 환경노동위원회가 '시즌2'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삼성 '반도체 백혈병' "고통받은 근로자·가족에 진심 사과" / 연합뉴스 (Yonha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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