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결 음색 선보인 게르기예프와 뮌헨필…역동성은 아쉬워
'발레리 게르기예프 & 뮌헨 필하모닉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리뷰
(성남=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뮌헨필하모닉오케스트라(이하 뮌헨필) 사운드는 여전한 광채를 뿜어냈다. 비록 공연장의 울림은 다소 건조했지만 특유의 비단결 같은 소리를 숨길 수는 없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지평선처럼 호흡이 긴 현의 노래, 힘차면서도 친근감이 느껴지는 금관 솔로, 결정적인 순간 아름다운 악센트를 부여하는 목관의 선율. 그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뮌헨필만의 고유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지난 21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극장 무대에 선 뮌헨필은 오랜 세월 동안 숙성된 그들만의 개성 있는 소리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특히 공연 후반부에 독일 교향곡의 모범이라 할 만한 브람스 교향곡에선 지휘봉을 잡은 발레리 게르기예프도 단원들에게 전적으로 모든 것을 맡기는 듯 자연스러운 지휘로 연주를 이끌었다.
다소 여유 있는 템포로 연주된 브람스 교향곡 1번 1악장에선 명지휘자 세르주 첼리비다케가 뮌헨필을 이끌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명상적인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특히 활의 모든 면을 균일하게 사용하는 현악기 주자들의 통일성 있는 합주 덕분에 음과 음 사이를 부드럽게 연결하는 레가토 주법은 경탄을 자아낼 만큼 훌륭했다.
또한 4악장 초반에 시원하게 터져 나온 호른 솔로와 트롬본 주자들의 조화로운 앙상블 역시 돋보였다. 마치 브람스가 적은 음표 하나하나가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몸속에 깊이 새겨진 듯, 몸에 밴 편안한 연주가 펼쳐졌다.
다만 뮌헨필의 연주는 지나칠 정도로 편안해 브람스 교향곡 1번이 담고 있는 긴장감과 역동성이 잘 살아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런 점은 공연 전반부에서도 아쉬운 점으로 작용했다. 첫 곡으로 연주된 스메타나의 '팔려간 신부' 서곡의 경우 현악 주자들의 오케스트라 입단 오디션 곡으로 지정이 될 만큼 까다로운 곡으로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들도 실황 공연에서 긴장하지 않으면 완벽한 앙상블을 선보이기는 어렵다. 뛰어난 기량을 갖춘 뮌헨필 현악 주자들도 이 곡 초반에는 계속 흐트러진 합주를 선보이며 다소 불안정하게 음악회를 시작했다.
또한 선우예권의 피아노 협연으로 연주된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협주곡 제3번 2악장에서도 피아니스트의 템포가 오케스트라보다 다소 빠르게 전개되고 있음에도 게르기예프가 이끄는 뮌헨필은 계속 느린 템포를 고수는 바람에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합주는 매우 흔들렸다.
2악장에서의 연주 완성도는 떨어졌지만, 프로코피예프 피아노협주곡 3번 연주는 관객들에게 많은 감흥을 전했다. 1악장 초반, 선우예권의 피아노 소리는 더블베이스 주자 8명까지 꽉 찬 오케스트라 현악기군의 풍부한 소리를 뚫고 나오기에는 다소 약한 듯 느껴졌으나, 점차 음향에 적응한 듯 특유의 재치 있고 명민한 연주로 프로코피예프 음악의 풍자적인 면을 잘 살려낸 연주로 청중의 귀를 집중시켰다.
선우예권은 특히 선율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데 있어 탁월한 감각을 지닌 듯하다. 하나의 선율을 이루는 구성음들 가운데 중요한 음들을 강조하며 청중에게 확실한 메시지를 전하는 그의 피아노 연주는, 전달력이 뛰어난 아나운서의 낭독처럼 명확하고 분명했다. 또한 빠르게 질주하는 1악장 후반과 3악장 후반, 활력 넘치는 리듬과 화려한 기교가 조화된 빛나는 연주는 관객들의 경탄을 자아냈다.
선우예권은 피아노협주곡 연주가 끝난 후, 뮌헨 태생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중 한 곡을 앙코르로 연주하는 감각 있는 선곡으로 뮌헨필과의 협연 무대를 멋지게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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