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통학차량 사망 사고에 경각심 주는 판결
처벌불원 의사 불구 집행유예 대신 실형 선고
재판부 "어처구니없는 과실로 어린 생명 잃어"
(의정부=연합뉴스) 김도윤 기자 = '어린이집 통학차량 방치 사망 사고'의 피해 아동 유족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냈는데도 법원이 이례적으로 집행유예 대신 실형을 선택했다.
재판부는 "엄히 처벌해 이 같은 유형의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경계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같은 취지로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온 피해 아동 담임교사에게 실형을 내려 법정 구속했다.
의정부지법 형사6단독 김종신 판사는 20일 업무상 과실 치사 혐의로 구속기소된 어린이집 통학버스 인솔교사 구모(28)씨에게 금고 1년 6월을, 운전기사 송모(61)씨에게 금고 1년을 각각 선고했다.
숨진 아동의 담임교사 김모(34)씨는 그동안 불구속 재판을 받았으나 금고 1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이날 법정 구속됐다.
역시 불구속 재판을 받으면서 무죄를 주장해 온 원장 이모(35)씨에게는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400시간을 명령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린 지난 7월 17일 오후 4시 50분께 경기도 동두천시내 한 어린이집 통학차량 맨 뒷좌석에서 A(4)양이 숨진 채 발견됐다.
A양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열사병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사고 며칠 뒤 비슷한 환경에서 측정한 차량 내부 온도는 44.9도까지 치솟았다.
숨진 A양의 부모는 재판 과정에서 자신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자책하면서 구씨 등 피고인들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며 재판부에 탄원서를 냈다.
모두 용서했다는 의미다. 피해자 유족의 처벌불원 의사는 피고인들의 형을 줄이는 요소로 작용한다.
고의범이 아닌 과실범의 경우 피해자 유족과 합의가 이뤄지면 일선 법원은 통상 금고형을 선고하면서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 다른 과실 사고와 달리 주의 의무 위반이 야기할 위험성이 충분히 예견되고 이를 대비할 기회도 충분히 있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그러면서 판결문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A양의 사망을 막을 수 있었다는 점이 이 사건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반대로 피고인들에 대한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적시했다.
특히 좁게는 유족들의 어린 딸이 사망한 사고지만 넓게 보면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 어린이집 안전 문제에 관해 진지하게 되돌아볼 계기가 되는 등 파장이 상당한 사건으로 규정했다.
이 때문에 A양 부모의 처벌불원 의사를 받아들이면서도 처벌을 통한 범죄의 예방 측면도 함께 고려했다.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던 담임교사에게 실형을 선고해 법정 구속한 점에서도 재판부의 엄벌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재판부는 담임교사 김씨에 대해 "A양이 등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빨리 확인·보고했더라면 적어도 A양이 사망에 이르지는 않았으리라는 점에서 안타까운 대목"이라며 "피고인에 대한 비난 가능성도 그만큼 크다"고 설명했다.
원장 이씨의 무죄 주장도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영유아가 차에 갇혀 숨지거나 크게 다치는 사고가 최근 잇따라 발생해 언론에 보도됐고 특히 여름철에는 어린이집의 다른 어떠한 업무보다도 각별히 신경 썼어야 한다"며 오히려 피고인을 질책했다.
2016년 7월 29일 광주광역시에서 유치원 통학차량에 갇힌 영유아가 뇌 손상을 입은 사고와 지난 7월 4일 경남 의령군에서 차량에 갇힌 영유아가 숨진 사고를 사례로 들었다.
원장 이씨는 보육시설 운영일지와 통학차량 통합안전점검표를 작성하고 교사와 운전기사를 교육하는 등 주의 의무를 다해 무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 과장에서 운영일지와 통합안전점검표가 며칠 지나 한꺼번에 작성되는 등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전체적으로 보면 이 사고는 단지 피해 아동에게 우연히 닥친 불운이 아니다"며 "어린이집의 허술한 안전 시스템과 보육 교직원의 안전의식 결여·의무 해태가 빚어낸 결과"라고 안타까워했다.
한편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유치원과 어린이집 통학차량에 하차 확인 장치 설치를 의무화했으며 국회에는 이들 시설의 운영을 일정기간 정지하거나 폐쇄할 수 있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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