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500년간 한국사회는 친족 이데올로기가 지배"

입력 2018-11-20 18:36
수정 2018-11-21 08:25
"1천500년간 한국사회는 친족 이데올로기가 지배"

마르티나 도이힐러 교수 '조상의 눈 아래에서' 출간

"신진사대부 조선 건국설은 허구…세족이 사족으로 변화"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한국에서 사회적 배경은 정치적 성취보다 중요했습니다. 엘리트와 비엘리트에 대한 구별이 매우 엄격했어요. 엘리트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했는가를 추적하고자 했습니다."

유럽 한국학 선구자인 마르티나 도이힐러 런던대 명예교수가 2015년 미국 하버드대 아시아센터를 통해 펴낸 '조상의 눈 아래에서'가 번역·출간됐다.

도서출판 너머북스가 20일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개최한 간담회에서 도이힐러 교수는 "신라 골품제가 만들어진 4∼5세기부터 조선 후기인 19세기까지 한국을 지배한 것은 정치체제가 아닌 친족 이데올로기"라고 강조했다.

전작 '한국의 유교화 과정'에서 15∼16세기 조선 사회에 영향을 미친 신유학(성리학)을 분석한 도이힐러 교수는 경북 안동과 전북 남원 지역을 조사하고 각종 문헌을 연구해 한국사회의 주요한 동인으로 작용한 친족 이데올로기를 파헤쳤다.

도이힐러 교수는 "한국에서 엘리트 사회의 기본 단위는 공동의 조상으로부터 본인들의 혈통을 찾는 친척 집합체인 출계집단(族, Descent Group)"이라며 "출계집단은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서로 다투기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귀족 가문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라 수도 경주에 거주하며 엘리트로 인정받은 사람들은 체제가 무너지면서 지방으로 이주했다"며 "인구의 10∼12%를 차지한 엘리트 집단과 나머지 구성원들 사이에는 명확한 경계선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도이힐러 교수는 친족 이데올로기가 한국에서만 나타난 현상이라고 역설했다. 그 근거 중 하나로 실력에 근거해 과거 급제자를 뽑은 중국과 달리 한국은 과거를 도입해도 사실상 양반에게만 응시 자격을 부여했다는 점을 꼽았다.

아울러 성리학을 받아들여 부계 사회가 됐지만, 사회적 신분은 부계와 모계에 의해 결정됐다고 설명했다. 신분이 낮은 여성은 본처가 되지 못했고, 그가 낳은 아이도 엘리트 집단에 끼지 못했다.

도이힐러 교수는 엘리트 집단이 오랜 세월을 버틴 이유로 조상숭배와 제사를 제시하면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정확히 알았고, 신분에 따라 조상을 모시는 사당 앞에 도열하는 순서도 달랐다"고 말했다.



친족 이데올로기가 한국사회를 움직인 요인이었다면, 한국사를 통념과 다르게 해석할 여지도 생긴다.

그는 "고려 후기 신진사대부가 조선을 건국한 세력이라는 고 이기백 교수 견해는 잘못됐다"며 "고려의 세족(世族)이 조선시대에 사족(士族)으로 바뀌었을 따름"이라는 파격적 주장도 펼쳤다.

아울러 조선시대 당쟁은 정치적 주도권을 잡으려는 싸움이었을 뿐만 아니라 엘리트가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벌인 사회적 현상이었다고 지적했다.

도이힐러 교수는 장자가 상속에서 우위를 점하는 상황에서 형제간 갈등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고안된 개념이 가족보다 폭넓은 '문중'이라면서 "문중은 비공식적인 조직이지만 분명히 존재했다"고 말했다.

도이힐러 교수의 주장을 종합하면 중국에서 한국으로 여러 사상과 관습이 건너왔지만, 고유한 친족 이데올로기가 워낙 공고해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결혼할 때 가문을 따진다거나 이야기 도중 조상을 거론하는 점을 예로 들면서 친족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한국사회에 남았다고 진단했다.

"외국인의 눈으로 한국을 보면 재미있는 점을 많이 발견합니다. 서양과 달리 한국에서는 왕조가 바뀌었는데도 지배 세력이 거의 바뀌지 않았어요. 이런 나라는 세계적으로 유일합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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