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답하다] 곽창희 사무총장 "나눔 교육이 국가 백년대계 돼야"
"가장 낮은 곳에서 따뜻한 나눔이 필요"
"모금 운영의 투명성, 공정성 통해 국민 신뢰 얻어야"
(서울=연합뉴스) 김은주 논설위원 = "헐벗고 가난한 이웃들을 돕기 위한 모금의 중요성을 20대, 30대 젊은이들은 잘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나눔 교육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학입시보다 나눔 교육이 우리나라 백년대계가 돼야 합니다."
구세군 자선냄비본부 곽창희 사무총장은 "매년 12월 등장하는 빨간색 구세군 자선냄비는 어느덧 겨울의 상징이 됐다"라며 "지난 한 해를 돌아다보며 따뜻한 나눔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라고 말했다.
구세군이 한국에서 자선냄비 모금을 시작한 지 올해로 90년이다. 곽 사무총장은 "모금 운영의 투명성, 공정성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 신문로 구세군회관 자선냄비본부에서 곽 사무총장을 만났다.
-- 자선냄비의 유래는.
▲ 1891년 추운 겨울 미국 샌프란시스코 부둣가에서 한 구세군 사관이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주방에서 수프를 끓일 때 쓰는 냄비를 걸어놓고 모금을 벌였다. 이를 시작으로 지금은 131개 국가에서 자선냄비의 사랑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구세군 자선냄비는 겨울의 상징이며, 어느덧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았다.
-- 우리나라에 자선냄비가 소개된 지 올해로 90년이 됐다.
▲ 한국 구세군은 1908년 10월 허가두(로버트 호가드) 사관이 설립했다. 1928년 12월 15일 박준섭(조셉 바아) 사관이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서울 시내 20곳에 자선냄비를 건 것이 시작이다. 그해 연말까지 보름 동안 모금한 돈이 848원 67전이었다. 이 돈으로 130여명에게 쌀을 나눠주거나 국밥을 끓여주었다.
일제강점기였던 자선냄비사업 초반에는 일본인들로부터 압박을 받았다. 그러나 설득을 하고 이해를 구해 자선냄비 모금은 근근이 이어졌고, 한국전쟁 기간에도 피난민들을 위한 자선냄비 사업은 계속됐다. 천막을 쳐놓고 죽을 끓여 무료급식을 했다.
매년 12월 구세군 자선냄비는 국민들에게 정서적으로 다가온다. 자선냄비를 보면서 '벌써 1년이 다 가는구나, 나는 1년 동안 무엇을 했나, 이웃을 위해 어떤 봉사를 했는가' 뭉클한 심정이 된다. 냄비에 1천원, 5천원, 만원을 넣으면서 '나도 선한 일을 하는구나' 스스로 위로를 받고 자긍심을 갖는다.
-- 성금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 구세군은 자선냄비뿐 아니라 연중 모금을 하고 있다. 매년 11월 1일부터 다음 해 10월 31일까지를 기준으로 정부에 신고하고 다음 해 모금 허가를 받는다. 지난해 1년간 모금액은 126억원 정도이며 후원 물품까지 하면 약 130억원이다. 지난해 12월 한 달 전국 419곳에 자선냄비가 설치됐고, 거리모금액은 약 63억원이었다.
올해는 11월 30일 광화문에서 시종식을 갖는다. 성금 목표는 145억원, 12월 한 달 거리모금 목표는 65~66억원 정도이다. 전국에 걸쳐 450~460곳에 자선냄비를 설치한다. 5만여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한다.
지난해는 모금액이 전년보다 늘었다. 내용을 보면 거리모금은 감소했고, 기업모금은 증가했다. 거리모금이 줄어든 것은 경제가 어려워졌기 때문도 있지만, 후원금을 횡령한 소위 '어금니 아빠' 사건도 영향을 주었다.
기업모금이 많아진 것은 구세군 활동의 투명성, 정확성, 공정성으로 기업들로부터 신뢰를 얻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카드를 주로 사용하고 현금을 많이 갖고 다니지 않아 거리모금이 줄어든다는 지적과 관련, 디지털 모금을 3~4년 시도했는데 경비도 많이 들고 경비 대비 모금액이 그리 많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보완해서 활성화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 지난해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모금 사례는.
▲ 서울 잠실 롯데백화점 앞에 설치된 자선냄비에 한 독지가가 수표 1억5천만원을 기부했다. 5천만 원짜리 수표 석 장이다. 자선냄비 사상 최고 금액이다.
-- 성금은 어떻게 사용하는가.
▲ 12월 31일 거리모금이 끝나고 그다음 해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전년에 모인 성금을 7대 사업에 배분한다. 아동·청소년, 노인·장애인, 여성·한 부모·다문화, 긴급구호·위기가정, 사회적 소수자, 지역사회, 해외 및 북한 등으로 나눠 지원한다. 태풍이나 지진 등으로 이재민이 발생한 경우 긴급구호로 이들을 돕는다. 사회적 소수자를 위해서는 예를 들면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자들을 대상으로 자활, 재활교육을 거쳐 사회에 복귀시키는 프로그램(ARC 사업)이 있다.
북한에는 과거 2007년부터 7년 정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을 통해 밀가루를 보내기도 했다.
해외사업으로는 지진이 발생한 인도네시아 등에서 긴급구호 활동을 벌였으며, 몽골, 필리핀, 캄보디아, 키르기스스탄 등의 심장병 어린이들을 한국에 데려와 치료해주고 다시 고국으로 보내는 해외 심장병 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 자선냄비 모금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가.
▲ 인구 이동이 많은 곳에서 모금해야 효과적이므로 지하철이나 상점 앞에서 자선냄비를 설치하는 경우가 많다. 영업하는 분들이 방해된다고 항의하고, 기차역이나 지하철역에서도 하지 말라고 해서 다른 곳으로 피하기도 한다. 서로 공존하고 사회를 아름답게 하자는 것인데, 이해 부족으로 활동에 어려움이 많다. 정부나 기관, 국민들이 조금이라도 동참한다는 차원에서 도와주면 좋겠다.
지난해에는 유사 자선냄비가 등장해서 국민들에게 혼란을 주었다. 구세군에도 문의 전화가 많이 왔다. 비슷한 모양의 냄비가 여기저기 걸려서 구세군 냄비와 혼동되는 바람에 엉뚱한 데 신경을 쓰고 시간을 낭비했다.
-- 올해 90주년을 맞아 구세군 자선냄비의 새로운 비전을 마련한다면.
▲ 지난 10월 22일 '이전의 자선냄비와 이후의 자선냄비'라는 주제로 90주년 기념 콘퍼런스를 가졌다. 앞으로 100년을 내다보면서 속도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방향성을 가져야 한다는 취지에서였다.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신뢰받고, 누가 봐도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되는 자선냄비가 되어야 한다.
-- 우리나라 기부문화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 한국은 아직도 나눔, 기부 면에서 인색하다. 정치적인 기부도 많이 있지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식의 기부문화는 아직 정착이 안 됐다. 보여주기식보다는 보이지 않는 따뜻한 나눔이 필요한데 아직 멀었다.
나눔 문화 확산을 위해서는 정부가 정책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세제 혜택도 더 줘야 한다. 종교법인의 경우 세액공제가 10% 정도밖에 안 된다.
'찾아가는 자선냄비'라고 해서 어린이집, 유치원을 방문해서 아이들에게 나눔 교육을 한다. 나눔이 얼마나 시너지효과가 있는지 어려서부터 가르치는 것이다. 이 아이들이 성장해서 나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면 성공이다. 아이들에게 저금통을 주면서 1년을 모았다가 12월 말에 기부하게 한다. 아이들이 왜 내가 저금을 해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써야 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아직 나눔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요즘 여러 비정부기구(NGO)에서 나눔 교육에 관심을 보인다. 이를 통해 나눔 문화가 퍼지기를 바란다.
-- 일부 기부단체에서 비리가 있었다. 기금사용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구세군은 어떻게 하는가.
▲ 자신이 기부한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당연히 알 권리가 있다. 후원자들에게 애뉴얼 리포트를 매년 보내주고 홈페이지에 정확하게 공지를 한다. 해마다 자체 회계감사와 외부감사를 받고 있다. 모금도 중요하지만, 투명성, 공정성을 확보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내가 낸 돈이 의미 있는 곳에 쓰인다는 것이 입증되면 기부문화가 더 확산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기부문화 활성화 방안은.
▲ 최근 국민 1천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식조사에 따르면 50~60대는 그래도 고생을 아는 분들이라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겠다는 생각이 있어 참여율이 높다. 반면 20~30대 젊은이들은 참여율이 낮다. 이 젊은이들은 풍요 속에서 살았고 개인주의가 심하다. 어려운 상대방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별로 없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이다. 지속적인 홍보와 캠페인, 투명성, 공정성 확보를 통해 젊은이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유치원에서 나눔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성장하면 나아질 수 있을 것인가. 대학을 들어가는 교육보다도 나눔 교육이 우리나라 백년대계가 되어야 한다.
※ 곽창희 구세군 자선냄비본부 사무총장은 구세군사관학교와 협성신학대학원을 나왔다. 1995년 임관한 이후 영등포교회 담임 사관, 과천 양로원 원장 등 교회와 시설에서 사역했다. 구세군 사회복지부장을 거쳐 지난해 9월1일부터 자선냄비본부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ke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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