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은 과거의 문헌 아닌 앞길 알려주는 안내자"
전통문화연구회 30주년…이계황 회장 "동양고전은 사상 뿌리"
"한자 모르면 동아시아서 교류 못해…1천∼2천자는 알아야"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문화 강국이 되려면 고전을 알아야 해요. 고전은 과거 문헌일 뿐만 아니라 앞길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특히 동양고전은 우리 사상의 뿌리이자 모체입니다."
한학계 산증인인 이계황(80) 전통문화연구회장은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사무실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이 회장은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하고 한국고전번역원 전신인 민족문화추진회에 들어가 20여 년간 활동했고, 올해 30주년을 맞은 전통문화연구회를 1996년부터 이끌었다.
고전번역원이 한국고전을 우리말로 옮기는 기관이라면, 전통문화연구회는 사서삼경(四書三經) 같은 동양고전을 집중적으로 번역했다. 그동안 펴낸 책이 166종 259책에 달한다.
이 회장은 "외국 유학을 준비하던 중에 목민심서, 열하일기, 대동야승 같은 책을 교정하면서 보다가 이 길에 들어섰다"고 회고한 뒤 "공자가 홀로 세상을 헤쳐 나갈 줄 알아야 한다는 뜻에서 '삼십이립'(三十而立)이라고 했는데, 연구회는 여전히 셋방살이를 한다"고 아쉬워했다.
우리 정신문화 형성에 영향을 준 고전 번역, 고전강좌 개설을 목표로 1988년 설립된 연구회는 원전에 충실한 역서를 펴내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회장은 "모든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이라며 "자기 이익만 취하는 소인이 되지 않으려면 고전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전은 수천 년 역사에서 이런저런 사람과 사건을 다 겪어본 뒤에 느낀 지혜를 담은 서적"이라며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고전 독서는 필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고전과 우리 언어를 익히기 위해 한자를 배워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한글 전용으로는 세계화를 할 수 없습니다. 한자를 알아야 중국, 일본과 교류하고 동양학을 할 수 있어요. 한자를 모르면 우물 안 개구리이고 반(半)문맹이에요."
이 회장은 "한문은 이미 사어가 됐기 때문에 연구자만 알아도 되지만, 국어의 핵심을 이루는 한자어는 머릿속에 있어야 한다"며 "한자 1천∼2천 자만 외워도 충분한데, 이 정도는 영어 공부에 들이는 시간의 10%만 투자해도 숙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연구회는 고전 번역이 주된 사업이지만, 고전을 사람들과 나누고 디지털화하는 데에도 진력했다.
지금까지 고전 강좌 수강생은 4만7천 명에 이르고, 사이버 강의를 듣는 사람도 적지 않다. 2016년에는 글 전체에 있는 한자 단어를 한꺼번에 한글에서 한자로 바꿔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특허를 받기도 했다.
이 회장은 "중국과 일본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정보화를 접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연구회 사이버 서당은 연간 1만원만 내면 강의를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회는 30주년을 맞아 21일 오후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특별 사업인 '오서오경독본'(五書五經讀本)과 '한문독해첩경'(漢文讀解捷徑) 시리즈를 소개하고, '선진문화한국 비전 2030∼2050'을 설명한다.
오서오경독본은 대학, 논어, 맹자, 중용, 소학과 시경, 서경, 주역, 예기, 춘추 번역서를 지칭한다. 이미 역서를 발간한 적이 있지만, 21세기를 맞아 내년까지 새롭게 간행한다. 한문독해첩경은 한문 고전을 읽는 데 도움이 되는 문법 요소를 쉽게 정리한 책이다.
이 회장은 선진문화한국 비전에 대해 어문정책 정상화를 바탕으로 동양고전 부흥, 국민의식 전환, 선진문화강국 정립을 단계별로 추진하는 것이 골자라고 설명했다.
"허황한 꿈 같나요? 꿈도 없는 사람이 뭘 이루겠습니까. 치욕스러운 역사를 되풀이하지는 않아야죠. 국민 수준이 높아지고 시야를 넓히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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