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무가베 퇴진 1년…짐바브웨 봄날은 '아직'
경제악화에 민주화는 물음표…"시간 필요하다" 신중론도
(카이로=연합뉴스) 노재현 특파원 =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장기 독재자로 군림했던 로버트 무가베(94) 전 대통령이 물러난 지 꼬박 1년이 됐다.
짐바브웨 군부는 작년 11월 14일(현지시간) 탱크 등을 동원해 쿠데타를 일으켰고 무가베 전 대통령은 같은 달 22일 전격적으로 사임을 발표하면서 37년 통치에 마침표를 찍었다.
짐바브웨 대통령은 자신의 부인에게 무리하게 권력을 넘겨주려다 군부와 집권당 '짐바브웨아프리카민족동맹애국전선'(ZANU-PF)의 반발을 샀다.
철옹성과 같았던 무가베 전 대통령의 몰락은 국제사회를 놀라게 했고 짐바브웨 국민은 새 시대를 기대하며 거리에서 환호했다.
그러나 짐바브웨의 미래는 여전히 안갯속에 빠져있다.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방송은 지난 14일 "무가베 퇴진 이후 1년이 지났지만 새로운 짐바브웨에 대한 희망은 아직 작다"고 지적했다.
짐바브웨 국민 사이에서는 새 지도자 에머슨 음낭가과(76) 대통령이 권력을 잡은 뒤에도 달라진 게 없다는 불만이 나온다.
짐바브웨 젊은이 타쿠드즈와 타웬가(32)는 알자지라방송과 인터뷰에서 새 정권에 실망했다며 "나는 음낭가과 대통령이 국민의 희망이라고 정말 느꼈지만, 무가베 시대에 경험한 고통은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AP통신도 지난 12일 '짐바브웨는 무가베의 퇴진 이후 무엇이 바뀌었는지 묻는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의 한 시민은 AP에 "그들(새 정권)은 우리를 속였다"고 말했다.
짐바브웨 국민의 실망은 무엇보다 경제가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음낭가과 대통령은 작년 11월 임시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부터 경제 재건을 약속했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눈에 띄지 않는 게 현실이다.
국민은 여전히 물가 급등과 실업률로 고통받고 정부는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
짐바브웨 통계당국에 따르면 올해 10월 1년 전 대비 물가상승률은 20.8%로 200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 시중에서는 빵, 약, 기름 등의 물품 부족 현상까지 벌어졌다.
또 짐바브웨 정부가 지난달 전자거래에 세금을 부과하는 정책을 도입하면서 국민의 반발을 샀다.
정치적 상황을 보면 음낭가과 대통령이 강조한 민주화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목소리가 적지 않다.
지난 8월 짐바브웨 경찰이 대통령 선거에서 부정 의혹을 제기하는 시위대에 발포해 최소 6명이 숨지는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짐바브웨 정부는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에너지 무토디 짐바브웨 공보부 차관은 "그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다"며 "과거 금기시됐던 표현·결사의 자유가 지금은 자리 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경제가 가장 큰 도전 과제"라며 경제 회복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인정하고 "우리는 가까운 미래에 짐바브웨인들을 위해 '최고'를 달성하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짐바브웨 정부를 지지하는 이들은 음낭가과 대통령을 좀 더 지켜본 뒤 평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가베 정권에서 망가진 경제와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부패, 비효율성 등을 개선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 7월 30일 대선에서 승리한 음낭가과 대통령은 2030년까지 짐바브웨 경제를 세계에서 중간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비전 2030'을 제시한 상태다.
아울러 지난 9월 아프리카개발은행(AfDB)에서 일했던 경제 전문가 음툴리 누베를 새 재무장관에 발탁하며 경제 개혁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짐바브웨는 아프리카에서 잠재력이 큰 국가로 꼽힌다.
조재철 주짐바브웨 한국대사는 "짐바브웨는 풍부한 지하자원과 빅토리아 폭포를 비롯한 관광자원이 있고 아프리카서 높은 교육수준을 자랑한다"며 "짐바브웨가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고 잠재력을 발휘할 날이 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noj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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