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관람료] ① [르포] "산에 가는데 왜 절에 돈을?"
"관람료 폐지하라" 전국 곳곳 펼침막ㆍ시비
"사찰 입구에서 받게 해달라" 국민청원도
(전국종합=연합뉴스) "등산만 할 건데 왜 문화재 관람료를 내야 합니까."
단풍이 절정이던 지난달 27일 지리산 천은사 매표소 앞은 문화재 관람료 징수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했다. 종교 투명성센터 등 7개 단체가 사찰 측의 관람료 징수에 항의하는 집회를 연 것이다.
이들은 관람료 징수 중단을 촉구하는 펼침막을 내걸고 시민들을 상대로 홍보전도 폈다.
김집중 종교 투명성센터 사무총장은 "국민 세금으로 관리하는 국립공원은 누구나 자유롭게 통행할 권리가 있다"며 "관람료를 걷는 자체가 잘못됐고, 그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도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천은사는 사찰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방도에서 관람료를 걷는다. 사찰 방문 계획이 없는 등산객이라면 당연히 기분이 언짢을 수밖에 없다.
일행과 노고단을 찾은 최진동(56·광주) 씨는 "모처럼의 나들이 기분을 망치지 않으려고 충돌을 피하지만, 도로 한복판에서 문화재 관람료라는 명목으로 돈을 받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관람료 징수를 둘러싼 소송도 있었다. 2010년 강모씨 등 74명과 2015년 박모씨 등 105명은 천은사를 상대로 통행 방해 금지 청구 소송을 내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당시 법원은 "도로 부지 일부가 사찰 소유라 해도 지방도로는 일반인의 교통을 위해 제공된 시설"이라고 판시, 강씨 등의 손을 들어줬다.
문화재 관람료를 둘러싼 갈등은 비단 이곳만의 문제가 아니다.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된 이후 전국 곳곳에서 10년 넘게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속리산의 경우 관람료가 탐방코스까지 바꿔놨다는 지적이 나온다.
속리산 국립공원은 법주사(충북 보은)·화북(경북 상주)·화양(충북 괴산)·쌍곡(〃) 4곳에서 출입할 수 있는데, 유일하게 법주사 지구에서만 4천원(성인 기준)의 관람료를 받는다.
이로 인해 정이품송 앞에서 기념사진 한장 찍고, 법주사를 거쳐 문장대에 오르던 전통의 탐방코스는 시들해졌고, 돈을 내지 않는 화북 등이 상대적으로 북적거린다.
박성노 속리산 관광협의회장은 "과거 속리산 탐방객의 70∼80%가 법주사를 거쳐 갔다면, 지금은 돈을 받지 않는 쪽으로 우회한다"며 "화북을 거쳐 문장대에 오를 경우 버스 1대당 10만원 넘는 입장료를 아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속리산 탐방객 134만9천400명 중 법주사 지구를 통해 입장한 경우는 67만9천500명(50.4%)으로 과거와 비교해 확연히 줄었다.
관람료 때문에 법주사 지구 탐방객이 줄고, 이 지역 상권도 덩달아 침체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설악산도 신흥사 주변에서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행락철마다 문화재 관람이나 사찰 방문 계획이 없다고 항의하는 과정에서 말다툼이 벌어지기 일쑤다.
15일 매표소 앞에서 만난 한 등산객은 "신흥사 경내에 들어가지 않고 비선대·비룡폭포로 가거나 케이블카를 이용해 권금성을 찾는 사람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관람료를 받는 것은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등산객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관람료를 내지만, 현금만 고집하는 사찰 측 횡포에 기분 상할 때가 많다"며 "무료화가 어렵다면 카드 사용이라도 허용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반면 불교문화 유산을 잘 관리하고 후세에 물려주려면 어느 정도 비용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는 옹호론도 있다.
한 문화재 전문가는 "문화재 보존은 국가 차원의 일인데 일방적으로 사찰 측에만 부담을 지울 수는 없지 않으냐"고 주장했다.
조계종 관계자도 "1천700년간 문화유산을 지켜왔고, 지금도 유지관리를 위해 애쓰는 불교계 노력을 외면한 채 관람료의 부당성만 논해서는 안 된다"며 "불교문화 유산에 대한 가치 평가가 선행되고, 그 바탕 위에서 보존대책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논란이 이어지면서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관람료를 폐지하거나 사찰 입구에서 받게 해달라는 국민청원이 줄을 잇는다.
올해도 지난달 이후 20건이 올라왔다. 이 중에는 등산로를 막고 통행세를 거두는 행위를 금품갈취나 '산적질'에 비유한 청원도 있다.
(이종건 박병기 장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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