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의 마지막 사진을 없애라…연극 '어둠상자' 개막

입력 2018-11-07 19:05
고종의 마지막 사진을 없애라…연극 '어둠상자' 개막

이수인 연출·이강백 작가 협업…"고종의 사진, 질곡의 현대사 상징"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모욕당한 사진'과 '그것을 찾아 없애려는 한 가문의 분투'라는 명료하고 기발한 은유로 한국현대사를 비춰보는 작가의 발상이 흥미로웠습니다."

이수인 연출은 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연극 '어둠상자' 기자간담회에서 "관객들에게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 기념작으로 기획·제작된 작품으로 이수인 연출과 이강백 작가가 손을 맞잡았다.

이번 연극은 고종의 마지막 어진(御眞·임금의 초상화나 사진)을 찍은 황실 사진가 집안이 4대에 걸쳐 그 사진을 되찾기 위해 벌이는 108년간의 분투를 다룬다.

고종은 1905년 미국 사절단과 함께 조선에 온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딸 앨리스에게 어진을 선물한다. 조미수호통상조약(1882)의 기억을 되살려 망해가는 나라에 대한 연민과 관심을 촉구하는 선물이었다. 그러나 앨리스는 "황제다운 존재감은 거의 없는 애처롭고 둔감한 모습"이라 조롱한다.

작가 이강백은 이 같은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보태 대본을 썼다.

고종이 '내 사진을 찾아내 없애라'는 명령을 했을 것이란 가정 아래 한 가문의 눈물겨운 이야기를 그렸다. 선대의 유지인 '문제의 사진'을 없애는 동시에 각 인물은 현재의 삶을 살며 다양한 위기에 직면한다.

4대의 이야기가 4막으로 구성돼 일종의 옴니버스 극처럼 꾸며진다.

그는 "고종의 사진을 식민지를 거치며 모멸당하고 주체를 잃은 민족적 경험의 상징으로 본다면 새로운 시대는 그 사진을 없애는 행위에서 비로소 시작된다"고 말했다.

이수인 연출 역시 "고종의 사진은 결국 오욕으로 점철된, 질곡의 현대사를 상징한다고 생각했다"며 "그 멍에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바람을 사진을 없애는 이야기에 담은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연극은 이날부터 12월 2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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