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 사찰·검증-제재완화 절충점 못찾았나…회담 연기배경 주목
단순 일정조율 문제인지 아니면 쟁점 둘러싼 이견 때문인지 관심
김정은 답방·철도연결·종전선언·풍계리 사찰 등에 영향 가능성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8일(현지시간) 뉴욕에서 개최한다고 미국이 발표한 북미고위급 회담이 전격 연기됨에 따라 그 배경은 물론 향후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미 국무부는 한국시간 기준으로 지난 6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간의 고위급 회담을 8일 뉴욕에서 개최한다고 발표했다가 하루만인 7일 연기를 발표했다.
회담 연기 발표문에서 국무부는 "(고위급 회담이) 후일에 개최될 것"이라며 "상호 일정이 허락할 때 다시 만날 것"이라고 밝혀 회담 개최 합의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또 "진행중인 대화는 계속될 것"이라고 부연함으로써 북미대화의 동력은 유지될 것임을 강조했다.
이로 볼 때 우선 갑작스러운 회담 연기는 북측 대표의 사정 등 기술적 문제 때문일 수 있다. 우리 외교부 당국자도 "회담 연기에 대해 너무 과도한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미국이 중간선거(현지시간 6일)가 끝나자마자, 불과 하루 전에 발표했던 회담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는 점에서 단순히 일정조율 등 기술적 문제 때문에 연기된 것은 아닐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의제가 충분히 조율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이 선거를 앞두고 서둘러 회담 개최를 발표한 것이거나, 북미간 회담 개최에 일단 합의한 상황에서 막판 쟁점을 둘러싼 조율이 여의치 않았을 수 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김영철 부위원장이 베이징발 미국행 비행편을 예약했다가 취소한 정황이 포착된 점은 일단 양측이 회담 개최에 최소한 잠정적으로는 합의했던 것 아니냐는 관측에 힘을 싣는다.
전문가들은 북핵 사찰·검증, 제재완화 등 미북 양측의 상호 관심사를 둘러싼 사전 조율이 여의치 않았던 것 아니냐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 연구위원은 "김정은 위원장이 최근 원산갈마지구에 가서 제재완화를 강력하게 이야기했는데 현재 상황에서 미국과 대화를 해도 그에 대한 성과가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을 북한이 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실험장 사찰단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미국에 제재완화 논의를 요구한 것 같은데, 폼페이오 장관이 비핵화 검증 완료시까지 제재를 계속하겠다고 하고 그에 북한이 반발했다는 점으로 미뤄 물밑 접촉에서 서로 양보가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미국이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한 4개항(새로운 북미관계 수립·평화체제 구축·비핵화·미군 유해 발굴)을 고위급회담에서 논의하자는 입장을 보이며 북한을 유인하긴 했지만 결국 '검증'을 강조하는 데 대해 북한이 부담을 가진 것 같다"고 진단했다.
신 센터장은 "북한은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담판을 짓기를 희망하는데, 현 상황에서 김영철 부위원장이 폼페이오 장관과 만나도 북미정상회담 일정 관련 합의를 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이제 관심은 고위급 회담이든, 스티븐 비건 미 대북특별대표와 최선희 외무성 부상 간 실무협상이든 북미대화가 얼마나 이른 시일 내에 열릴 수 있을지에 쏠린다.
지난 8월말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이 발표됐다가 취소된 뒤 지난달 7일 성사때까지 1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렸는데, 이번에도 그 정도나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경우 북미협상 결과와 연동돼 있던 다른 한반도 관련 주요 일정들이 뒤로 밀릴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조기에 북미대화 일정이 잡히지 않을 경우 풍계리와 동창리 사찰, 한국전쟁 종전선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남북 철도연결 공동조사 및 착공식 등 연내를 시야에 두고 있던 다른 중요 이벤트들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우선 우리 정부로선 미국이 북미 후속협상 재개때까지 남북경협에서 속도 조절을 해 달라고 요구할 경우 철도연결 공동조사, 북한내 양묘장 현대화 등 연내에 하기로 합의한 사업 일정을 조절해야 할 상황이 올 수 있다. 종전선언과 김 위원장 답방 구상도 당초 상정한 시기에 비해 미뤄질 수 있을 전망이다.
반면 북한은 북미대화의 공백기가 길어질 경우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평양 답방 등 일정에 속도를 내면서 '배후'를 든든히 다지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조성렬 연구위원은 "북미대화 일정이 조기에 다시 잡히지 않을 경우 전반적으로 여러 일정들의 연기가 불가피할 것"이라며 "김정은 위원장 방남과 남북 철도연결 착공식 등도 예정대로 진행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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