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인' 한명숙의 베를리너 8개월…"상대편 헤아려 손 잡아야"

입력 2018-11-07 06:10
수정 2018-11-07 08:15
'자연인' 한명숙의 베를리너 8개월…"상대편 헤아려 손 잡아야"

베를린자유대 방문학자로 獨통일 공부…"힐링의 시간, 정치은퇴 실감"

"뿌리깊은 반공의식·트라우마 헤아려야…야당에 벽 느껴도 손 내밀고 울림줘야"

옥살이중 한국화 배워…문화적 가치 고려한 도시재생·'촛불' 공간적 상징화 강조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제가 베를린에 있을 때까지는 햇볕이 계속 들 겁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독일 베를린의 가을 날씨를 걱정해왔다. 주위에서 잔뜩 겁을 줬다. 그러나 매년 10월이면 찾아오던 가을 추위와 잿빛 하늘은 한 전 총리를 비켜갔다. 이상기후 덕을 봤다.

지난해 8월까지 한 전 총리는 24개월 간 해를 자유롭게 보지 못했다. 의정부 교도소의 작은 독방에서 보낸 탓이다. 정치적 탄압 논란을 낳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혐의가 유죄로 인정된 데 따라서다.

출소 후 자택에서 몸을 추스른 한 전 총리는 마침 인연이 있던 베를린자유대에서 방문학자로 초청을 받았다.

그러고선 8개월을 베를리너로 보냈다. 힐링의 시간이었단다. 정치인 한명숙이 아닌 자유로운 시민 한명숙으로서. 지난 6일 한 전 총리가 머무는 작은 원룸을 찾아 인터뷰했다. 베를린자유대학이 방문학자들을 위해 운영하는 레지던스였다.

"다시 세상에 나와선 길을 자유롭게 다니지 못했어요. 뛰어와서 눈물 흘리는 사람도 있었고, 시장에서 장을 봐도 돈을 안 받겠다고 손사래를 쳐 억지로 쥐여주고 오기도 하고… 너무 고맙고 또 고마웠지만 부담이 되기도 했습니다. 정치인의 카테고리에서 아직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베를린에 와서 자유롭게 된 것 같아요. 진짜 정치에서 은퇴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힐링하면서 통일을 이룬 독일에서 이들은 어떻게 교류했고, 통일을 이뤘는지 배우고 싶어 이곳으로 오게 됐습니다."

한 전 총리는 2000년 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쉴 새 없이 달려왔다. 여성부 장관, 환경부 장관, 17대 국회의원, 국무총리, 서울시장선거 민주당 후보, 19대 국회의원, 민주당 대표.

화려한 경력이지만 2010년부터는 한편에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 것이다.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9억 원을 수수했다는 혐의였다.

한 씨는 법정에서 검찰수사 내용을 전면 부인했고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정형식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재판장이 된 2심 재판부는 다른 증거를 인정해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도 2심을 인정했다.

"서울시장 선거를 얼마 앞두고 검찰이 혐의를 걸었을 때는 정치탄압이라는 것을 직감했어요. 시민사회운동할 때 시국사범으로 재판을 받아도 나라를 위해 하는 일인 데다, 여러 사람이 함께 고초를 겪는 일이어서 견디기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불법 정치자금 혐의는 충격이 컸어요. 제가 여성 정치인으로서 여성이 부패에서 더 자유롭다고 주장해왔는데, 제가 혐의를 받으니 국민이 어떻게 생각할지 괴로웠습니다. 그래도 버티고 살아남는 게 이기는 것이라는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한 전 총리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무거워진 눈으로 기자를 쳐다보기가 쑥스러운 듯 베란다 창문을 통해 바라보이는 곱게 물든 낙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잠시 뜸을 들인 후 '양승태 사법부' 재판거래 의혹에 관한 느낌을 물었다.

"객관적으로 나온 사실로 판단하면 될 것 같습니다. 사법부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사법부가 바로 서지 않으면 나라가 휘청이게 됩니다. 국민이 바로잡아줘야 합니다."



독일 이야기로 화제가 바뀌었다. 한 전 총리는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가 1969년 집권해 동방정책을 표방한 뒤 서독 정치권이 합심한 점을 강조했다.

"독일은 연립정부를 오래 유지해와 차별화를 위한 경쟁도 합리적으로 하는 것 같아요. 당리당략적인 측면이 강한 우리나라 정치와는 차이가 있지요."

한 전 총리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정치에서 은퇴한 만큼 현실정치에 대해서는 답변하기가 쉽지 않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러나 독일 정치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국 정치 상황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특히 남북관계의 역사적 전환점에서 필요한 정치권의 자세를 물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관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해 기대 이상으로 잘해왔습니다. 이 흐름을 이어가면서 여당과 청와대가 꾸준히 야당에 손을 내밀고 설득해야 합니다. 싸움하게 되더라도 끈질기게 대화를 이어가야 합니다. 욕을 먹어도, 정말 육중한 벽이 눈앞에 놓여있다고 느껴도 그 벽에 계속 울림을 줘야 합니다. 물론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끝까지 타협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럴수록 벽에 계속 울림을 주다 보면 100%는 안 되더라도 70∼80%는 손을 잡아줄 것입니다. 예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퇴임 후 하신 말씀이 자꾸 생각납니다. 우리나라는 남쪽이 보수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진보는 다른 세력과 손을 잡지 않으면 법률 하나 통과시키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7할을 내주더라도 손해라고 생각하지 말고 합쳐야 합니다."

한 전 총리는 평양 출신 실향민이다. 그만큼, 실향민들의 정서, 한국전쟁을 거친 후 뿌리 깊게 형성된 반공의식에 대한 이해도가 깊다. 그런 탓인지 더욱 포용적 사고를 강조했다.

"우리는 전쟁을 거치지 않은 동서독과 비교해 진한 뿌리 깊은 앙금이 있어요. 그만큼 반공의식과 앙금, 트라우마, 상실감 등을 헤아려 손을 잡아야 합니다."

귀국 후 계획을 물었다.

"'허(her)스토리'를 만들고 싶다고 할까요. 남북관계 등에서 경험한 일을 글로 정리하고 싶습니다. 독일에서의 경험담을 통해 우리가 배우고 공유해야 할 점도 정리할 계획입니다. 우리는 문화강국이 될 수 있는 자질이 있습니다. 흥과 끼가 많습니다. 이를 발휘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줘야 합니다. 베를린에서 벽 한쪽만 옛날 모습 그대로인 건물들을 여러 채 봤어요. 전쟁을 거치면서 무너지지 않고 남은 벽을 활용한 것인데요. 저희도 남아있는 것을 부수지 않고 도시재생으로 살려냈으면 좋겠습니다. 또, 우리만큼 저항의식이 있는 나라도 없어요. 무너지려 할 때 항상 국민이 일어나 여기까지 왔습니다. '촛불'의 역사도 외국인들이 찾아와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대중 친화적인 예술로 충분히 거리에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남북관계가 발전하면 DMZ 등 활용할 자산이 많은 데, 이런 것도 잘살려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원룸의 베란다에는 직접 그린 한국화 몇 점이 걸려 있었다. 숙련된 프로의 솜씨 같지는 않았지만, 보통의 아마추어 수준을 훌쩍 넘어선 실력인 듯했다. 옥살이하면서 처음으로 붓을 잡았단다. 일주일에 한 차례 교도소를 찾아 자원봉사를 하는 서예가가 스승이었다. 독방에서 작은 일회용 김 통에 먹물을 담아 사용했다고 한다. 책과 함께 한국화는 24개월 간 가장 친근한 벗이었다.

베를린에서는 한국화를 생각만큼 그리지 못했단다. 생각보다 움직일 곳이 많았다. 독일 통일 과정 등을 바쁘게 살펴봤다. 원룸의 작은 책꽂이에는 베를린자유대가 만든 독일통일백서 20여 권이 꽂혀 있었다. 옛 동독의 구체제 마지막 총리였던 한스 모드로 등 독일 통일과 관련된 주요 인사들을 만나면서 궁금증을 풀어나갔다.

한 전 총리는 베를린에서 요리 솜씨도 발휘했다. 작은 원룸은 베를린의 유일한 '평양냉면 집'이었다. 지난 4월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평양냉면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자 어렵사리 재료를 구했다. 작은 탁자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평양냉면을 맛본 이가 줄잡아 50명이 넘는단다. 베를린자유대 방문학자와 시민사회 활동가 등이 베를린에선 거의 불가능했던 기회를 잡았다.

인터뷰 도중 촛불집회의 공간적 상징화, DMZ 보존, 문화적 측면을 고려한 도시재생 등을 이야기하는 한 전 총리의 표정은 꿈 많은 문학소녀 같았다. 한 전 총리의 출국 직전까지도 베를린의 하늘은 햇빛을 허용했다.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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