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등에 매달린 원숭이', 아이폰 판매 대수

입력 2018-11-05 16:39
애플의 '등에 매달린 원숭이', 아이폰 판매 대수

분기 판매 공개 않기로…WSJ "기업들 불리한 것 숨기는 추세"

"투명성 낮아지면 신뢰 잃게 될 것" 경고도

(서울=연합뉴스) 김현재 기자 = 애플은 지난주 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아이폰·아이패드·맥 컴퓨터의 판매 대수를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다.

출시 이후 매 분기 판매 대수를 공개해온 애플의 이 갑작스러운 발표는 아이폰 판매 대수가 신통치 않은 상황과 무관치 않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 "지난 2009년 아마존이 전자책 킨들의 판매 대수를 공개하지 않겠다고 발표하자, 당시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그건 킨들이 많이 팔리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공박한 적이 있다"면서 "10년 후 애플이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RBC 캐피털의 아밋 다리아나니 애널리스트는 "애플의 사생활 보호 정책이 아이폰 판매 대수 비공개로 확장됐다"고 비꼬면서 "많은 주주들은 애플이 뭔가(매출 대수)를 숨기려 하고 있으며, 그것은 애플의 등에 탄 원숭이(a monkey on their back)"라고 말했다.

신드바드의 모험에 나오는 등에 올라타서 떨어지지 않는 원숭이에서 유래된 이 말은 마약 중독같이 좀처럼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일컫는 속어로, 아이폰 기기 판매가 애플의 난제가 됐다는 의미다.

애플은 지난 3분기에 4천690만 대의 아이폰을 판매했다고 밝혔다. 전년 동기 대비 0.4%가 늘어났지만, 팩트셋과 스트리트어카운트 기대치인 4천750만 대에는 못 미친 것이다.

지난 2월 발표한 2017년도 마지막 분기 판매 대수는 아이폰 출시 이후 처음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감소세를 기록한 바 있다.



3분기 아이패드 판매는 지난해 동기보다 6% 줄어든 960만 대에 그쳤고 맥북 판매는 지난해와 비슷한 530만 대였다.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상태로 접어든 데다 소비자들의 아이폰 평균 사용 연한이 길어지면서 판매 실적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WSJ은 전망했다.

판매 실적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애플뿐 아니라 최근 여러 기업이 취하고 있는 전략이다.

지난 4월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 제너럴모터스(GM)는 수십 년 동안의 관행이었던 월간 판매 대수 공개를 그만두겠다고 발표했다. 전기차 생산업체 테슬라도 판매 대수 미공개에 동참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소매업 체인인 월마트와 타깃도 변동성 제거라는 명목으로 월간 매장 판매액 대신 분기별 판매액을 발표하고 있다.

회계 자문사인 아이즈너앰퍼 LLP의 피터 바이블은 "새로운 추세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면서 "월간 단위 판매량이든, 자동차 판매량이든,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판매량이든, 기업들이 불리한 것은 공개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애플은 판매 대수 성장률이 갈수록 하락하는 것과 달리 매출과 수익은 크게 늘었다.

평균 판매가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아이폰 가격은 2년 전과 비교하면 최고 2배가량 올랐다. 혁신에 비해 가격 상승이 너무 가파르다는 비판에도 애플은 "소비자가 살 때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며 일축했다.

그러나 하버드대 비즈니스 스쿨의 데이비드 요피 교수는 "애플은 월가를 상대로 한 설명 방식을 바꾸고 싶겠지만, 낮은 투명성은 단기적으로 신뢰를 떨어뜨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kn020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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