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로 칼럼] 南도 北도 중간선거후 對美외교 정교해져야
(서울=연합뉴스) 성기홍 논설위원 = "미국 행정부 내부는 이데올로기적 전쟁상태였다". 조지 부시 2기 행정부 때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인 크리스토퍼 힐은 회고록 '미국 외교의 최전선'(Outpost ; Life on the frontlines of American Diplomacy)에서 2005∼2006년 대북정책을 둘러싼 행정부 내 온건파와 강경파의 대립을 이렇게 묘사했다.
온건파는 외교로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에 새로운 협력 패턴을 구축하려는 그룹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 크리스토퍼 힐이 대표적이다. 강경파는 적과의 협상은 나약한 것이고 북한과는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그룹이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딕 체니 부통령, 존 볼턴 유엔대사가 최전선에 있었다. 2005년 9·19 공동성명 합의에도 불구하고, 돌출한 북한 돈세탁 혐의 방코 델타 아시아(BDA) 제재로 북미 관계 개선이 진전하지 못한 배경에는 노선 투쟁이 존재했다. BDA 제재 선봉장인 재무부 차관 스튜어트 레비는 볼턴의 정치적 측근이었다.
강경파의 발목 잡기로 6자 회담도 중단된 교착상태는 2006년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완패하면서 변화의 출구가 열린다. 민주당이 12년 만에 상·하원 선거에서 압승했다. 민심이 부시 행정부의 경직된 이념 정치, 일방주의 외교 정책을 심판함에 따라 부시 대통령은 인적 쇄신으로 전환을 꾀했다. 선거 직후 네오콘의 상징인 럼즈펠드 국방장관과 볼턴 대사가 경질됐다. 강경파의 퇴장으로 다시 북한과 대화 흐름이 부각되고 2007년 1월 베를린 북미 양자 회담이 열린다. 2·13 합의로까지 이어졌다. 2006년 중간선거는 공화당의 참패로 미국의 대외정책이 바뀌고, 한반도 안보와 직결된 대북정책까지도 뒤바꾼 선거였다.
트럼프 행정부를 평가하는 중간선거가 6일 치러진다. 민주당의 승리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하원에서 공화당이 다수당 지위를 잃을 것이라고 한다. 2006년처럼 선거 패배 여파로 트럼프의 대북정책도 선회할까? 민주당이 이기면 여세를 몰아 트럼프의 2020년 재집권을 막으려 그의 제반 정책에 제동을 걸고, '톱 다운' 방식으로 추진되는 트럼프 대북정책의 수정도 강제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세 가지 이유로 대북 대화 기조에 변화는 없을 것이다. 첫째, 전통적으로 중간선거는 대외정책이 변수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번에도 최대 이슈는 경제, 이민, 건강보험 등 국내 사안들이다. 피츠버그 유대교 회당 총기 난사, 연쇄 폭발물 소포 사건 등 증오범죄도 막판 변수로 부상했다. '서울의 시각'이 아니라 '워싱턴의 시각'으로 본다면 대북정책은 중간선거의 변수가 아니다. 2006년 중간선거가 대외정책 변화를 초래했지만, 본질은 국내 정치였다. 당시 핵심 이슈는 9·11 테러 후 네오콘이 주도한 이라크 전쟁이었다. 그때까지 이라크전에서 사망한 미군은 2천8백여 명에 달했고 추가로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감내해야 할지 여론은 인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국내 정치로 전이된 대외정책이었다.
둘째, 트럼프는 선거에서 공화당이 패하더라도 자신의 정치적 패배로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남북전쟁 이후 38차례의 중간선거에서 대통령 소속 정당이 하원에서 승리한 것은 딱 세 번밖에 없다. 대공황이던 1934년, 빌 클린턴 탄핵소추 역풍이 불었던 1998년, 9·11 테러로 안보 이슈가 부상한 2002년 중간선거가 예외이다. 중간선거는 본디 '여당의 무덤'이다. 게다가 이번 선거에서 상원에서 공화당이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면 트럼프가 졌다고 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셋째,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북한과 대화를 통해 핵 문제를 풀어나가는 노선을 지지한다. 때문에 트럼프의 대북대화 기조 자체를 발목 잡을 가능성은 적다. 2006년 당시 네오콘 주도 대북정책에 민주당이 이념적으로 반대했던 상황과는 다르다.
그러나 선거 이후 '여소야대' 의회로 워싱턴 정치의 역학은 변화가 불가피하다.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은 북한의 비핵화 진전이 가시화하지 않을 경우 트럼프 전략이나 예산을 수반하는 대북 조치에 제동을 걸 수 있다. 독단적으로 대북 협상을 끌고 가는 트럼프 스타일을 문제 삼을 수 있다. 대북 제재완화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등은 법안과 관련돼 의회가 권한을 갖고 있다. 민주당 하원은 수시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청문회에 불러 '콩 놔라 배 놔라' 하며 정치적으로 관여할 수도 있다.
북미 협상의 중매자이자 촉진자인 우리 정부나, 협상 당사자인 북한 모두 미국의 대북정책 관여자가 다원화되는 흐름을 염두에 둬야 한다. 정부는 중간선거 이후 대미 외교에서 행정부만이 아니라 의회 외교를 강화해야 한다. 트럼프의 결단에 기대를 거는 북한도 의회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외교에 미치는 미 의회의 영향력은 크다. 북한은 협상에 집중도를 더욱 높여야 한다. 비핵화 조치의 속도가 늦어지면 협상에 회의적인 미국 내 여론이 부상할 것이다. 미국 정치가 2020년 대선 국면으로 이동할수록 트럼프의 대북정책 에너지가 이완될 수 있다. 중간선거 후 남북의 비핵화·평화 외교는 보다 전략적이고 정교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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