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했던 그 날'…드러나는 5·18 계엄군 성폭행 증언
미투 운동으로 점화…정부 조사단, 성폭행 17건 공식 확인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자행한 성폭행 사건이 정부에 의해 공식 확인되면서 40년 가까이 드러나지 못했던 피해자들의 증언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당시 여고생이었던 A씨는 끔찍했던 그 날의 일을 지난 2000년 5·18 기념재단에 구술 기록으로 남겼다.
A씨의 증언에 따르면 1980년 5월 19일 귀가하던 A씨는 광주 북구 유동 인근에서 군인들에 의해 트럭에 강제로 태워졌다.
끌려가지 않기 위해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몸부림쳤지만 돌아온 건 군인들의 무자비한 주먹세례였다.
납치를 당하듯 트럭에 타게 된 A씨는 다른 3명의 여성과 함께 인근 야산으로 끌려가 집단 강간을 당했다.
계엄군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증언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집에 돌아오지 않은 오빠를 찾으러 나갔다가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던 여고생의 사례, 옛 광주 MBC 근처 목욕탕에 끌려 들어가 성폭행을 당한 사례 등이 5·18 관련 단체에 접수됐거나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져 왔다.
피해 사실을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하면 계엄군의 성폭행이 보다 광범위하게 벌어졌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1989년 5공 청문회 때 A씨의 증언이 세상에 알려질 기회가 있었지만, 주변의 만류로 끝내 증언대에 서지 못했다.
"계엄군이 아무리 악랄하다지만 강간까지 했다고 하면 누가 믿겠냐"며 "다른 조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역공만 당할 것"이라는 게 주된 이유였다.
그렇게 피해자들은 40년이 다 되도록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침묵을 강요받았다.
그 사이 피해자들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정신 질환을 앓으며 평생을 지내야 했다고 5·18 재단 관계자는 안타까워 했다.
지금까지 억눌러왔던 5·18 계엄군 성폭행 증언은 최근 '미투(Me too) 운동'에 힘입어 조금씩 터져 나오고 있다.
전남도청에서 안내방송을 맡았다가 1980년 7월 붙잡혀 간 김선옥씨는 65일 동안 갖은 폭행과 고문을 당했다.
폭행과 고문보다 더 견디기 어렸던 건 풀려나기 하루 전 소령 계급장을 단 수사관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이었다고 털어놨다.
길거리에서 독려 방송을 했던 차명순씨도 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이들의 폭로가 계기가 돼 지난 6월 구성된 여성가족부·국가인권위원회·국방부가 참여한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은 31일 공식 활동을 종료하며 17건의 계엄군의 성폭행 범죄를 확인하고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결과를 이관하기로 했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계엄군 성폭행은 국가적인 범죄 행위였다. 피해자에 대한 치유와 회복을 위한 국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피해자들의 증언과 이번 조사가 진상을 밝히는 부분에 큰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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