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中 기술굴기 짓밟기 본격화…"반도체는 시발점일 뿐" 관측
전문가 "전면 확산 가능성"…전례없는 '보이콧 목록' 가동개시
"전략적 경쟁자에 의존 불가" 핵심부품 공급망서 中 퇴출 작업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중국의 기술 굴기에 대한 미국의 견제와 압박이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중국의 푸젠진화반도체를 제재한 것은 향후 비슷한 방식으로 지속할 공세의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29일(현지시간) 미국 기업들과 푸젠진화의 거래를 사실상 금지했다.
푸젠진화는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반도체를 만들기 위한 중국 정부의 30년 계획을 마무리하는 핵심이었다.
이번 조치로 푸젠진화가 더는 미국 업체들로부터 부품 설계와 제조기술을 이전받지 못할 것이란 게 일반적 관측이다.
기술 전문가들은 푸젠진화와 중국 정부의 반도체 야망이 이번 조치로 작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으로 진단했다.
푸젠진화가 반도체를 만드는 실리콘 기판을 다루는 공학기술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소수 기업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번스타인리서치의 마크 뉴먼은 30일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중국 반도체 야심에 중대한 조치"라고 말했다.
뉴먼은 푸젠진화가 어플라이드 머티리얼, 램리서치, KLA-텐코 등 미국 기업의 도움 없이는 성장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번 조치를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 되풀이될 새로운 공세의 시발점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프랑스 투자은행 나티시스에서 중국을 주로 분석하는 이코노미스트인 알리시아 카르시아 헤레로는 "미국이 더는 중국이 보유해서는 안 된다고 보는 첨단기술이라면 모든 곳으로 이번과 같은 조치를 확대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헤레로는 미국이 중국의 통신장비업체 ZTE(중싱<中興>통신)에 과거 유사한 조치를 취한 적이 있으나 이번 조치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강조했다.
ZTE는 미국이 금지한 이란, 북한과의 거래가 적발돼 제재를 받은 반면 푸젠진화는 미국 기업의 기술을 훔친 혐의를 받는 데다가 중국 기술굴기의 핵심이기도 하다는 설명이다.
미국 정부가 이번 조치를 취하면서 향후 유사한 제재의 틀까지 만들었다는 점도 주목된다.
미국 상무부는 수출관리규정(EAR)에 따른 '기업 목록'에 푸젠진화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제재를 가했다.
EAR은 미국 국가안보나 대외정책에 해로운 외국기업을 규제할 수 있도록 하는데 매우 시급한 경우에 적용돼왔다.
통상법 전문가인 더글러스 제이컵스는 로이터 인터뷰에서 미국 산업을 보호하려고 '기업 목록'을 꺼내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며 적용범위가 극적으로 확장됐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기술 굴기를 시급한 안보위협으로 보고 이를 견제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해왔다.
고율관세를 치고받는 무역전쟁도 이른바 중국의 '첨단기술 도둑질'을 명분으로 삼아 시작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올해 3월 22일 중국 제품에 대한 고율관세 부과를 지시하는 '중국의 경제침략을 겨냥한 대통령 각서'에 서명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각서를 통해 미국의 첨단기술을 중국이 불공정하거나 불법적 수단으로 빼돌리는 관행을 맹비난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7월 관세 집행을 발표하면서 중국의 기술획득 방식을 두고 "미국의 가장 중대한 비교우위와 우리 미래 경제의 생사를 좌우할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중국 기업들이 자본력을 앞세워 미국 기업들을 인수, 기술을 흡수하는 전략을 차단하기 위해 미국 의회는 외국인투자위험조사현대화법(FIRRMA)을 초당적으로 의결했다.
미국 재무부는 FIRRMA의 2020년 2월 발효를 앞두고 과도기적 조치로 중국 자본이 인수합병이나 의사결정 참여와 같은 개입으로 미국 기술을 빼돌릴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규정을 이달 초 도입했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 정부는 양자컴퓨터, 인공지능, 로보틱스 등 미래 산업을 장악하려는 중국의 전략을 분석하고 대책을 관계부처 합동으로 모색했다.
이 조사의 결론을 담아 이달 초 발표한 보고서 '미국 제조업, 방위산업기지, 미국 공급사슬 복원력에 대한 평가와 보강'에는 중국의 공급망 장악에 대한 큰 우려와 함께 핵심부품을 전략적 경쟁자인 중국에 의존하는 사태를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권고가 담겼다.
윌버 로스 상무부 장관은 푸젠진화의 제재를 발표하면서 "미국 군사체계의 필수적 부품을 공급하는 사슬을 위협하는 능력을 제한할 것"이라고 미국의 입장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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