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속지주의 美시민권' 손보나…"행정명령으로 폐지" 논란

입력 2018-10-31 05:51
수정 2018-10-31 13:29
트럼프 '속지주의 美시민권' 손보나…"행정명령으로 폐지" 논란

"미국 땅서 태어났다고 시민권 부여 말도 안돼"…원정출산도 '불똥'

실행시 '위헌' 논란 불가피…라이언 하원의장 "행정명령으로 폐지못해"



(워싱턴=연합뉴스) 임주영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땅에서 태어난 아기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국적 관련 제도인 '출생시민권'(birthright citizenship)을 폐지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터넷매체 악시오스가 30일(현지시간) 공개한 인터뷰에서 시민권이 없는 사람이나 불법 이민자가 미국에서 낳은 자녀에게 시민권을 주는 제도를 없애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언급은 1주일 앞으로 다가온 중간선거(11월 6일)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그간 펼친 '반(反) 이민정책'의 수위를 더욱 높여 '이민 이슈'로 선거판을 흔들고 보수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앞서 중미 출신 이민자 행렬(캐러밴·Caravan)의 미국 유입을 막겠다며 군인 투입, '텐트 도시' 건설 등 강경책을 내놓은 상황에서 반이민 정책의 '2탄'격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에는 이슬람권 국적자의 난민 입국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기도 했다.

출생시민권은 부모의 국적과 상관없이 미 영토에서 태어난 아기에게 시민권을 주는 제도다. 미국의 국가 구성과 운영 원리를 담은 수정헌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미 국민의 공민권을 규정한 수정헌법 제14조는 제1절에서 미국에서 출생하거나 귀화한 사람, 행정관할권 내에 있는 모든 사람은 미국 시민이라고 규정한다.

이는 자국에 있는 사람에게 권리를 부여하고 법을 적용한다는 법률 원칙상 '속지주의'에 따른 것이다.

미국은 호주나 캐나다 등과 같이 그 나라의 국민이 되는 자격으로서 국적 제도를 두지 않고 시민권 제도를 두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시민권은 실질적으로는 국적과 그 법적 성격이나 기능이 거의 동일하다.

따라서 속지주의에 따라 모든 출생자에게 일괄적으로 부여하던 출생시민권을 철폐하겠다는 것은 미국이 '자국 중심주의'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도 읽힌다.

특히 이는 미국 시민이 아닌 타 국가 국민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파장이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에도 이 제도 폐지를 공약으로 내놓은 바 있다.

이번 방침은 멕시코 등 불법 이민자를 많이 배출하는 주변 국가들을 주로 겨냥한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을 포함한 각지의 '원정출산 희망자'에게도 불똥이 튈 수 있다.

악시오스는 행정명령 추진이 '앵커 베이비'(anchor baby·정박하듯 원정출산으로 낳아 시민권을 얻은 아기)와 '연쇄 이민'(chain migration·시민권자나 영주권자가 부모·형제 등 가족을 초청하는 제도를 활용해 연쇄적으로 하는 이민)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을 제기했다.

앞서 미 이민연구센터는 매년 3만6천 명의 원정출산 여성이 미국에서 아이를 낳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2015년에 내놓은 바 있다. 미 보수층은 원정출산을 비판해왔다.

폐지 추진이 구체화할 경우 법적 쟁점을 둘러싼 논란도 가열될 전망이다.

폐지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찬반 논란과 함께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에 대해 대통령의 행정상 권한인 행정명령을 통해 제약을 가하는 것이 가능한지도 논란거리다.

이번 논란이 법정으로 가서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 발언과 관련해 수정헌법 조항을 언급하면서 "그런 조치는 150년 전에 개정된 헌법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방적인 출생시민권 폐지 공언은 '헌법에 대한 도전장'이라는 얘기다.

다만 방침이 언제 어떻게 실행에 옮겨질지는 미지수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언제 행정명령에 서명할지는 말하지 않았다면서 그가 과거 행정명령을 사용하겠다고 밝혔던 일부 발언은 이행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집권 여당인 공화당에서도 마뜩잖아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위스콘신)은 켄터키 WVLK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행정명령으로 출생시민권을 폐지할 수 없다"라고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이런 발언은 대통령을 상대로 여당에서 나온 보기 드문 '도전'이라고 AP통신은 전했다.

라이언 의장은 과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행정 조치를 통해 이민법들을 바꾸려고 시도했을 때 공화당은 이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보수주의자로서, 우리는 헌법을 믿는다"고 말했다.

반면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옹호했다.

펜스 부통령은 트럼프 행정부가 수정헌법에 따라 보장된 출생시민권 제도를 개정할 조치를 찾고 있다고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와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대한 지지를 모으기 위한 전술이라는 점을 부인했다.

위헌 논란과 더불어 헌법 해석 문제도 거론된다.

일부 보수층은 수정헌법 14조가 합법적인 시민권자와 영주권자에게만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트럼프 행정부 출신인 마이클 안톤 국가안보회의(NSC) 전 대변인은 현행 제도 적용이 수정헌법을 잘못 이해한 데 따른 것이라고 올해 초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주장했다.

출생시민권 제도와 관련한 연방대법원 판례는 1898년 내려진 바 있지만, 이는 합법적인 영주권을 가진 이민자가 낳은 자녀에게만 해당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연방대법원은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이민자 출신 중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Wong Kim Ark)가 미국 시민이라는 판결을 1898년 내렸다. 판단 근거는 이 아이가 미국 땅에서 출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안톤 전 대변인은 이 판례가 불법 이민자 자녀에게 시민권을 인정하는 것으로 읽혀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대통령의 조처(행정명령)가 수정헌법을 무효화할 수 없다"면서 수정헌법은 의회나 각 주(州)에서 압도적 다수의 판단에 의해서만 바뀌거나 무효로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 헌법을 바꾸려면 상·하원에서 각각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고 전체 주(州)의 4분의 3 이상이 승인하거나, 전체 주의 3분의 2 이상의 요구로 개헌협의회를 소집해 수정안을 만든 뒤 4분의 3 이상의 주가 승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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