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이란 데탕트 서막?…아랍 이슬람권에 스며드는 이스라엘

입력 2018-10-30 20:44
反이란 데탕트 서막?…아랍 이슬람권에 스며드는 이스라엘

이스라엘 장관 2명 UAE 잇단 방문…이스라엘 국가도 연주

이란 고립시키려는 대이란 공동전선 본격화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이스라엘 정부가 아랍 이슬람권과 접촉면을 빠르게 넓혀가고 있다.

보수적 유대 민족주의자인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이스라엘 현 정부가 여느 정권보다 더 강경하게 팔레스타인 정책을 펴는 것을 고려하면 의외의 현상이다.

이스라엘과 아랍 이슬람권의 '은밀한 데탕트설'은 지난해 6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로 책봉되면서 수면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무함마드 왕세자와 친하다고 알려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을 고리로 이스라엘과 사우디가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양국 관계를 정상화하는 데 가장 골치 아픈 걸림돌인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현재 상태를 고착화하는 방향으로 양측이 접근했다는 추정도 나왔다.

올해 3월 무함마드 왕세자가 미국에서 현지 유대인 지도자 그룹을 만났을 때 "팔레스타인은 지난 40년간 번번이 기회를 놓치고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 이스라엘과 협상하든지 그러기 싫으면 불평하지 말고 입을 다물어야 한다"고 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당시 미국 언론과 인터뷰에서도 "이스라엘도 자신의 땅에 살 권리가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가 해결되면 이스라엘과 정상적인 관계가 될 수 있다"고 말해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올해 5월 미국 정부가 주이스라엘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했을 때도 사우디는 즉각적으로 이를 반대하지 않았다.

미리 레게브 이스라엘 문화체육부 장관이 27일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를 방문하고, 이스라엘 국가인 하티크바가 UAE 영토 안에서 연주된 것도 크게 보면 이런 맥락과 맞닿은 것으로 보인다.

비록 국제유도대회라는 '외피'를 썼지만, 수니 아랍권의 지도국인 사우디가 '승인'하지 않았다면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레게브 장관은 이스라엘군 대변인 출신답게 팔레스타인과 이슬람을 모멸하는 수준의 발언도 서슴지 않았던 강경 보수성향의 인물이다.

그는 이 유도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이스라엘 대표 선수의 시상식에서 하티크바가 연주되자 감격해 울음을 터뜨렸다. 아부다비의 대표적인 이슬람 종교시설인 셰이크 자예드 대사원에도 방문했다.

국제대회를 유치하려면 이스라엘 국적자와 국가 연주를 용인하라는 국제유도연맹(IJF)의 요구를 UAE가 받아들인 차원이었으나 그간 아랍 이슬람권과 이스라엘의 적대적 관계를 고려하면 단순히 비정치적 스포츠 행사로 넘길 수는 없는 이정표라고 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29일엔 아유브 카라 이스라엘 정보통신부 장관이 UAE 두바이에서 열린 국제전기통신연합(ITU) 회의에 참석했다.

이스라엘 장관 2명이 잇따라 매우 이례적이고 공개적으로 아랍 이슬람권에 발을 디딘 것이다.

이들이 UAE를 방문하는 동안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공습하고, 반이스라엘 시위대에 실탄을 발포해 5명을 사살했다.

앞서 네타냐후 총리는 25∼26일 술탄 카부스 빈 사이드 오만 군주의 초청으로 오만을 정상방문했다. 이스라엘 총리가 오만을 방문한 것은 22년만이다.

오만 역시 종교, 정치적으로 중립이긴 하지만 아랍 이슬람권의 일원으로서 이스라엘과 국교를 수립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방문 직후 유수프 빈 알라위 빈 압둘라 오만 외무장관은 "중동에서 이스라엘은 국가로서 존재하고 우리 모두 그 사실을 안다"며 "아마 이제는 이스라엘을 엄연한 국가로 대해야 할 때인듯하고, 이스라엘도 그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과 숙적인 아랍 이슬람권이 접근하는 원동력은 '대이란 공동전선'으로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예멘 내전, 이란 핵합의 등 이란의 역내 세력 확장에 맞서 양측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시리아 내전에서 이란의 영향력을 군사적으로 막는 유일한 나라가 이스라엘이기도 하다.

사우디 유력 언론인 압둘라흐만 알라시드는 28일 국영 알아라비야 방송 홈페이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스라엘은 시리아에서 영향을 키우는 이란을 타격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랍권이 하지 못한 일을 떠맡은 것이다. 그 덕분에 중동에서 군사적 균형이 맞춰졌다"고 주장했다.

네타냐후 총리도 지난주 의회 연설에서 "이란의 핵 위협에 대적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아랍 국가들과 거리가 가깝다"고 말했다.

아랍 이슬람권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고립하려는 '반(反)이란 데탕트'의 서막이 서서히 시작된 셈이다.

그 사이 팔레스타인은 '애물단지'가 될 처지다. 이들의 사실상 유일한 버팀목은 아이러니하게도 수니파도, 아랍계도 아닌 이란이다.

이란은 오만과 관계가 원만한데도 네타냐후 총리를 초청한 데 대해 "정당화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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