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첫 법관 탄핵소추 가능할까…발의·의결까지 첩첩산중
정의·시민단체 '군불'에 민주 '거리두기'…한국·바른미래·평화 "시기상조"
'재적의원 ⅓ 발의·과반수 찬성' 필요…역대 두 차례 발의, 결국 무산돼
(서울=연합뉴스) 고상민 한지훈 기자 =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에 관여한 현직 법관들을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이 국회 안팎에서 서서히 힘을 받는 가운데 국회의 법관 탄핵소추가 헌정사상 처음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시민단체로 구성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는 30일 사법농단 연루 의혹을 받는 법관 6명의 탄핵소추안 초안을 공개, 국회의 조속한 탄핵소추안 의결을 촉구했다.
비록 소수정당이기는 하지만 정의당도 이날 의원 5명 전원이 법관 탄핵소추에 동참하겠다고 공식 입장을 발표, 국회 차원의 군불 때기에 나섰다.
그러나 정작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유보적인 입장을 취함에 따라 법관 탄핵소추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이해찬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시국회의 관계자와 만나 "법관 탄핵소추를 추진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정무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관계자는 "한국당의 반대로 특별재판부 구성을 위한 법안 처리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법관 탄핵까지는 더 어려울 수 있다는 현실적인 부분을 우회적으로 설명한 것으로 이해된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물론 '사법농단 특별재판부' 설치에 동참한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도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당장 이번 정기국회 내 논의는 불투명해 보인다.
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국회의 법관 탄핵소추는 헌법 조항에 따른 것이므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자유"라면서도 "현재 법관들에 대한 탄핵 사유가 맞는지에 대해선 법적 판단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법적 결과가 나온 후 절차에 따라 문제를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바른미래당 김삼화 수석대변인도 "지금 법관들에 대한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이고, 이후 형사 판결이 확정되면 그 이후에 절차에 따라 논할 수 있는 문제"라며 "지금 법관 탄핵소추를 말하는 것은 순서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평화당 장병완 원내대표 역시 통화에서 "탄핵소추는 너무 앞서갔다. 특별재판부 설치가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법관 탄핵소추 문제가 일단 이슈화에는 성공한 만큼 향후 여론 추이에 따라 언제든 여야가 법관 탄핵소추 발의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이날 사법농단 시국회의 기자회견장에서 "특별재판부 설치 노력의 후속 차원에서 법관 탄핵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하지만 여당인 민주당이 법관 탄핵소추에 팔을 걷고 나선다 해도 실제 탄핵소추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헌법 제65조 2항에 따르면 법관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발의가 있어야 하고, 의결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요구된다.
소추안 발의는 민주당(129석) 의원들만으로도 가능하지만, 의결에는 최소 150석이 요구돼 정의당(5석) 외에 바른미래당(30석)과 평화당(14석)의 협조가 필수적인 상황이다.
제헌국회 이래 현직 법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은 두 차례 발의됐지만 본회의에서 통과된 경우는 전무하다는 점도 법관 탄핵소추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
1985년 12대 국회 때 신한민주당은 당시 유태흥 대법원장이 일선 판사들에게 불공정한 인사 조처를 했다며 탄핵소추안을 발의했으나 부결됐다.
이후 24년 만인 2009년 18대 국회에서는 '광우병 촛불집회 재판 개입' 의혹을 받은 신영철 대법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발의됐지만 72시간 이내 표결이 이뤄지지 않아 자동 폐기됐다.
goriou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