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년 버티며 살아온 김중업 '집'으로 가는 길

입력 2018-10-28 09:00
수정 2018-10-29 16:05
반백년 버티며 살아온 김중업 '집'으로 가는 길

1960년대 설계한 이기남 주택·미국제일은행지점장 주택, 첫 일반공개

"건축가는 '삶의 공간' 설계하는 예술가"…지붕서 독특한 조형언어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계단 난간을 미끄럼틀 삼아 놀던 소년은 이제 쉰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됐다. 이제 이 계단을 그의 초등학생 딸이 타고 논다. 수많은 사람이 오르내렸을 계단은 반질반질 윤이 난다. 대패로 일일이 다듬은 탓에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인 디딤판들은 그래서 더 아름답다.

건축가 김중업(1922∼1988)이 1968년 완공한 '한남동 이기남 주택'은 그렇게 반백 년을 버텨온 모습으로 27일 사람들을 맞이했다.

김수근(1931∼1986)과 함께 한국 현대건축 주춧돌을 놓은 김중업 대표작으로는 주한프랑스대사관, 삼일빌딩, 올림픽 세계평화의문 등이 꼽힌다. 하지만 집 또한 그가 애정을 쏟은 대상 중 하나였다. 집은 예술이어야 하며, 건축가는 '삶의 공간'을 설계하는 예술가라는 것이 김중업 지론이었다.

좀처럼 열리는 일이 없던 김중업 '집'이 이날 처음 속살을 보였다. 국립현대미술관과 건축문화축제 '오픈하우스서울'이 협업한 건축기행을 통해 김중업이 설계한 한남동 이기남 주택과 성북동 미국제일은행지점장주택이 일반에 공개됐다.



처음 내부가 공개된 이기남 주택은 기업인 이기남(84·현 훈민정음학회 이사장) 씨 자매가 당시 김중업에게 설계를 의뢰한 3채 중 하나다. 주한네덜란드 대사관저로도 잠시 사용됐다가, 이씨 가족이 이사와 지금까지 산다. 인접한 다른 두 곳은 헐려서 다가구 주택이 되거나, 옛 모습을 크게 찾을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원래는 벽돌담이던 돌담을 통과하자, 지하 1층 지상 2층인 철근 콘크리트조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계단은 이곳 설계자가 누구인지 단박에 보여준다. 말뚝처럼 박힌 계단은 김중업의 1980년대 설계 주택에서 공통으로 찾아볼 수 있다.

이곳은 일본과 프랑스를 거쳐 현대건축을 경험한 김중업이 집이라는 공간 특성을 고려하면서도, 여러 실험을 꾀했음을 보여준다. 1층 거실을 통유리로 마감한 것(사방에 건물이 세워지면서 벽으로 바뀌었다)이나 철골 3개로 떠받친 2층 테라스 콘크리트 차양 등은 1960년대 주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시도였다.

최호진 지음건축도시연구소장은 "김중업 작업의 중요한 조형적 특징이 지붕인데 건물에 붙지 않고 철골로만 지탱한 차양은 그만큼 자신감을 보여준다"라면서 "서양을 모방하면서도 한국건축 묘미를 보여주는 매우 수준 높은 건축"이라고 평했다.



자고 일어나면 도시 풍경이 바뀌는 서울에서 집이 반백 년을 살아 버티기란 쉽지 않다. 1980년대 김중업이 직접 진행한 개보수를 비롯해 여러 번 수리를 하면서도 원형을 지켜온 이기남 주택은 그런 점에서 의미 있는 문화유산이다.

집을 안내한 이씨 장남은 "사실 집이 너무 크고 관리하기도 힘들어서 부수고 새로 지을 생각을 하고, 건축 허가까지 얻었다"라면서 우연히 안양 김중업건축박물관을 방문하면서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머니와 자주 교우한 김중업을 "키가 크고 점잖았던 분"으로 회상하면서, "정말 많은 추억이 깃든 곳이라 나중에 아이들도 이 집에 살기를 바라지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성북동 골짜기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미국제일은행지점장 주택도 지붕을 중시한 김중업의 독특한 조형언어를 보여준다.

석조건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날카로운 예각을 사용한 삼각지붕이었다. 하늘을 향해 바짝 얼굴을 치켜든 모습이었다. 현관 위로 지붕처럼 뻗어 나온 보, 통석을 가공해 묵직한 중량감을 살린 바닥 마감도 눈길을 끌었다.

2천년대 초반까지 은행 지점장이 거주한 이곳은 한국씨티은행 뱅크하우스로 이용되고 있다.



두 주택은 1971년 광주대단지 필화사건으로 정권 미움을 사 강제 출국당한 김중업 초기 작업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카페로 쓰이는 연희동 3층 단독주택이나 주택 중 가장 뛰어난 작품성을 보인다는 한남동 이강홍 주택 모두 1980년에 지은 것이다.

최 소장은 "남아 있는 김중업 자료가 많지 않은데 김수근 못지않게 김중업도 우리 건축사에서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을 더 많은 대중이 알았으면 한다"라면서 "우리 건축가들이 이 땅에서 하고자 한 것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기행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는 '김중업 다이얼로그' 전과 연계한 프로그램이다. 현존하는 김중업 단독주택이 몇 안 되는 데다, 주택은 내부를 둘러볼 기회가 거의 없다는 점 때문에 이날 기행은 뜨거운 경쟁률을 보였다.

최여정(52) 씨는 "김중업 주택을 보기 위해 과천에서 왔다"라면서 "건물을 잘 보존한 채 저렇게 아름답게 내부를 관리해온 모습이 감동적이었다"고 밝혔다.

건축사무소 직원인 나지혜 씨는 "건축가들이 설계한 주택은 개인공간이라 좀처럼 공개되는 일이 없어서 좋은 기회였다"라면서 "이러한 건축 답사 프로그램이 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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