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강제징용 정부입장, 사법부 판단 존중하며 정립"(종합)

입력 2018-10-27 00:22
강경화 "강제징용 정부입장, 사법부 판단 존중하며 정립"(종합)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본 뒤 정부 입장 결정할듯

외교부 의견서 철회요구에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다가 말바꿔

박근혜 정부 시절 외교부 의견서 국감서 '뜨거운 감자'로 부각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오는 30일 이뤄질 일제 강제징용 배상 소송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재상고심 판결을 존중해가며 정부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강 장관은 26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 존재 유무 등에 대해 "사법부가 법과 절차에 따라 판단을 내려줄 것을 기대한다"며 "그 결과에 따라 사법부 판단을 존중하며 정부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11월 외교부가 법원에 제출한 정부 의견서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의도나 취지에 문제가 되고 있는데 대해 현직 장관으로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제기된 사항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의견서를 포함해 징용 자료 작성과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 외교부 자체적으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그렇게 검토하고 (조사) 계획을 세우겠다"고 언급했다.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이 나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열린 이날 국감에서는 우리 정부가 2년전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의 철회 문제가 쟁점이 됐다.

이날 국감 막판 정리된 입장을 내기에 앞서 강 장관은 의원들의 의견서 철회 요구에 "지금으로서는 전임 정부 외교부가 낸 정부 의견서를 철회한다거나 의견서를 새로 낼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가,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지자 "유념해서 적극적으로 심도 있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의견서의 '당사자'로서,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에게 여당 의원들의 의견서 관련 질타와 추궁이 쏟아졌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11월 외교부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 문제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통해 해결됐다는 취지의 일본 정부 입장을 부정하지 않는 취지로 법원에 의견서를 냈다. 특히 이 시기는 2015년 말 박근혜 정부가 피해자의 입장을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은 채 일본 정부와 위안부 합의를 타결해 논란이 커졌던 때다.

당시 의견서는 "(국제 사법재판소로 갔을 때) 법리적으로 한국이 이기기 어려운 사안",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따라)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재산을 압류할 경우 양국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등 내용을 담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며 미쓰비시 등 일본 전범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2012년 대법원 1부의 파기환송 판결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최종 확정될 경우 예상되는 외교적 파장을 주로 서술한 것이었다.

학계에서는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反) 인도적 불법행위와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양국 청구권협정의 대상 밖이라는 지적과 함께, 근대법의 원리로 봐도 개인의 청구권은 조약으로 소멸시킬 수 없다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그런 터에 일본의 입장을 수용하는 듯한 외교부 의견서 내용은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앞두고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실정이다.

이 의견서는 이른바 양승태 사법부와 외교부 간의 '재판거래' 의혹과도 맞물려 논란을 일으켰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외교부의 입장을 반영해 강제징용 관련 재상고심 판결을 지연시키는 대가로, 법원행정처가 법관 해외파견을 늘리기 위한 민원을 외교부에 제기했다는 의혹에 대해 현재 검찰이 수사를 진행중이다.

특히 외교부 의견서를 만들 당시 외교부 장관이었던 윤병세 전 장관이 취임 전 징용 배상 소송과 관련해 일본 기업의 대리인이었던 김앤장에 고문으로 몸담으며 소송에 관여했고, 외교부의 2016년 의견서는 그 당시 김앤장의 논리와 일맥상통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박병석 의원은 지난 10일 외교부 1차 국감때 윤병세 전 장관에 대해 "이해충돌의 원칙에 위반되는 비양심적 처사"라고 강도높게 비판한 바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현 정부가 2016년 의견서 철회를 간단하게 선언하지 못하는 배경은 우리 정부가 취해온 기존 입장이 있는데다, 철회에 따를 외교적 파장이 간단치 않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대법원 1부의 배상 판결이 있기 전까지 한국 정부는 한일 청구권협정에 원폭 피해자 문제와 위안부, 사할린 동포 문제는 포함되지 않는 만큼 별도로 배상하라고 일본에 요구하면서도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이 입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정부가 한일국교정상화 협상 관련 외교문서를 공개하면서 수립한 것이었다.

그러던 중 2012년 5월 대법원이 일본 기업들에 대한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 배상 청구 소송에서 배상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하고 이듬해 서울고법과 부산고법 등 하급심 재판부가 잇달아 일본 기업들에 배상 판결을 내린 이후 정부는 "진행중인 사법절차를 지켜봐야 한다"면서 구체적인 입장 표명을 피해왔다.

강경화 장관이 이날 국감에서 박근혜 정부 시절의 '정부 의견'을 철회하는 문제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인 것도 자칫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점 뿐 아니라 2005년 이후 정부가 징용 문제에 대해 '정치적으로 해결됐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바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법원 판결이 최종 확정되기 전에 2016년 의견서를 철회할 경우 징용 배상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바꾸는 일로 해석될 수 있기에 최종 판결이 나오기 전부터 일본이 강하게 반발할 공산이 크다.

이 딜레마는 대법원 전원 합의체의 판결이 나온 뒤에도 다시 불거질 수 있다. 판결의 향배에 따라 징용 문제가 '정치적으로 해결됐다'는 기존 입장을 수정할지에 대해 최종 판단을 내려야할 상황이 올 수 있다.

만약 일본 기업들의 징용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쪽으로 판결이 나올 경우 해당 기업과 일본 정부가 수용하지 않을 것이 확실시된다. 그럴 경우 피고 기업의 국내 자산을 압류하는 등의 강제조치를 취하느냐, 정부 차원에서 다른 해결책을 찾느냐 사이에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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